김응종 충남대 사학과 교수

서양의 역사에서 1월은, 왕에게는 잔인한 달이다. 1649년 1월 30일에는 잉글랜드의 찰스 1세가 처형당했고, 1793년 1월 21일에는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처형당했다. 이로써 두 국가에서는 왕정이 종식되고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1642년 1월 잉글랜드 국왕 찰스가 반대파 지도자를 체포하기 위해 의회에 침입함으로써 시작된 잉글랜드 혁명은 참혹한 내전을 거친 후 의회파의 승리로 끝났다. 국왕이 살아 있는 한 항구적인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의회는 1649년 1월 20일 국왕을 국가반역죄로 기소했고 1월 27일 사형을 선고했다. 3일 후 찰스는 어떠한 법정도 신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재판할 수 없다는 요지의 연설을 한 후 참수당했다.

1791년 6월 21일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혁명이 한창이던 나라를 버리고 탈출하려다 실패한 바렌 사건은 그를 혁명의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1792년 4월부터 시작된 혁명전쟁으로 내부의 적을 처단할 필요성이 절박해졌고, 1792년 9월에는 혁명파가 왕정을 종식시킴으로써 프랑스에서도 150년 전의 잉글랜드에서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했다. 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 같은 과격파는 루이는 왕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범죄자이기 때문에 재판할 필요도 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베르니오 같은 온건파는 1791년의 헌법은 국왕에게 불가침권을 주었기 때문에 국민만이 그러한 불가침권을 박탈할 수 있다며 국민재심을 주장하였다. 의회는 최종적으로 국왕이 유죄임을 만장일치로 판정했으나 국민재심안은 부결시켰다. 형량으로는 387 대 334로 사형이 결정되었고, 집행유예안은 380 대 310으로 부결되었다. 3일 후, 루이 16세는 혁명광장(오늘날의 콩코드 광장)에서 참수되었다.

왕당파의 전설은 왕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여러분, 나는 죄없이 죽습니다! 나는 나를 죽인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나와 같은 억울한 피가 프랑스에 다시 떨어지지 않기를 신에게 기원합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는 북소리 속에 잠겨 버렸다. 왕의 목이 떨어지자, 군중들은 "국민 만세!", "공화국 만세", "자유 만세?", "평등 만세!"를 외치며 열광했다.

국왕을 처형한다는 것은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서양의 역사에서 왕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였다. 왕은 교회로부터 기름부음과 축성을 받은 준(準)성직자였다. 왕은 국민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국민이 국왕을 폐위시킬 수는 없었다. 정변에 의해 국왕이 쫓겨나기는 했어도 수도원에 유폐되는 정도였지 처형을 당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러한 국왕을 처형한다는 것은 국왕과 연결되어 있는 종교의 힘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왕 개인을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왕정이라는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 즉 공화정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왕국의 주인은 왕이다. 루이 14세가 말한 대로 "짐이 곧 국가"인 것이다. 왕은 평생 왕으로서 지내다가 왕국을 자기의 후계자(대개는 아들)에게 물려준다. 왕국이 자기의 재산이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상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은 다르다. 공화국(Republic)이라는 말의 의미가 곧`공공의`(Public) `것`(Res)을 뜻하듯이, 공화국은 국민의 것이다. 공화국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일정한 기간 동안만 통치자를 임명한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이행은 혁명이라는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공화정이 더욱 민주주의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진보임은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왕정이건 아니건 민주주의 국가이건 독재국가이건, 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다.

최근에 왕처럼 군림하던 폭군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국가는 공화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자처하는 북한은 `왕`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세습에 성공하여 명실상부한 왕정국가임을 드러냈다. 역사의 진행을 거스르고 있는 북한체제가 한심하고, 주권을 빼앗긴 채 노예처럼 살고 있는 북한 주민이 불쌍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수천 년간 왕정체제를 유지해왔으면서도 1945년 해방 이후 왕정으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왕정은 아무런 아쉬움과 동정심을 남기지 않았다. 왕정은 한마디로 나라를 망치고 빼앗긴 악한 체제였던 것이다. 북한은 바로 그 체제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역사적 좌표가 이것보다 더 분명하게 차이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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