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지난해 애플사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자서전이 발간되면서 `몰입`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회자되고 있다.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살았던 스티브 잡스. 부친의 집 차고에서 초라하게 시작한 애플이라는 회사를 세계 최고의 IT회사로 키워낸 이 괴짜 같은 엔지니어의 삶에서 우리는 자신의 목표에 진정으로 `몰입`하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성취를 이뤄내는지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몰입`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분야를 떠올려본다면 아마도 `예술` 또는 `문학`일 것이다. 창작을 통해 자신만의 미적 세계 내지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예술가나 문학가들에게 있어 `몰입`은 일상의 범상함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필요조건과도 같다. 이러한 `몰입` 때문에 때로 예술가나 문학가들의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까지 비치기도 한다. 흔히들 몰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일필휘지(一筆揮之)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건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다. 완벽을 추구하는 미친 집중력. 문제를 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한 가지 문제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 필요한 것이 몰입이라 할 수 있다. 즉, 밤하늘의 혜성처럼 떠오르는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결국 생각을 거듭하고 집중할 때 얻게 되는 몰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 작가는 놀이와 몰입 그리고 연상을 통해 창조적인 활동을 했다고 한다. "미래를 새로이 개척하는 건 우리를 아주 행복하게 해줍니다. 소유라는 건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한 사람을 위한 것이죠. 그런데 창조는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본인만 행복한 게 아니라 남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남들도 행복하고 이를 통해 나는 더 행복해지니 소유하는 것보다 창조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죠." 백남준은 사람이 깊은 몰입에 빠질 때 가장 행복하며 그때 창의력이 발산된다고 말한다. 몰입의 시간을 갖는 동안에는 의식하는 자신을 떨쳐버릴 수 있기에 잃어버렸던 본연의 기질과 성질을 만날 수 있고, 자신의 뿌리인 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과 달라지기 위해서 `나다워지는 것`에 충실했으며,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완전히 나다워지면 저절로 창조적인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과학기술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현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며,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이나 문학처럼 늘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새로움을 추구해야 되는 분야이다. 인류에게 신문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으며 컴퓨터라는 한 가지 목표를 정해놓고 몰입했던 스티브 잡스. 어느 누구도 실현 가능성 제로라며 코웃음 쳤던 일에 그는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걸고 몰입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잡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창작 기간을 애플사에서 퇴출당하고 난 뒤를 꼽고 있다. 인생사의 아픔과 고난 속에서도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오직 자신의 목표에 몰입해 창작이라는 즐거움을 만났을 때, 그는 세계가 놀랄 만한 과학의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기술계의 현실은 과학기술인들이 연구에 몰입하고 생산적인 결과를 얻기에는 이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위험요소가 너무나 많다. 과학기술인에 대한 낮은 처우와 인식은 젊은이들 사이에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만연케 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창조한 기술을 모방이라도 하여 연구비를 수주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있는 현실 속에서 필자 또한 진정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의 삶은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에는 분명하리라.

창작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한 시인은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시는 몰입 끝에 찾아오는 `운명의 조타수`라고.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믿지 말고 열정을 믿을 것을 당부한다고 시인은 말했다. 몰입의 이음동의어는 열정이라는 이 시인의 말처럼 스탠퍼드대학의 한 졸업식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사회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늘 (새로운 지식에) 배고파 하고, 늘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 자신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배고픔과 어리석음이 몰입으로 이어져 열정을 뿜어낼 때, 한국과학기술계에도 제2의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나오리라 믿는다. 몰입하라(Stay focused!). 임진년 새해, 우리 모두 자신의 일과 삶에 깊이 몰입함으로써 후회 없는 한 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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