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박원순 서울시장이 얼마 전 내년부터 3년 동안 매년 1000억원의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여 소외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 기금(基金)의 절반은 민간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발표를 보면서 참으로 희한한 발상도 다 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기금을 조성하거나 예산을 편성하는데 민간기업으로부터의 기부를 전제로 하는 경우도 있나 싶어서다.

중앙정부이건 지방정부이건 예산은 법으로 정한 대로의 국민세금과 기타 수입금으로 충당하게 되어 있다. 세금 이외의 기부금으로 예산을 충당하겠다는 발상은 지금까지 어떤 정부, 어떤 정권에서도 있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법을 뛰어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법을 무서워하지 않던 평소의 재야 활동무대에서 익힌 수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기부금을 거두어들이기로 한다면 누구인들 못 거두어들일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기부의 미명(美名)하에 저질러지는 민폐(民弊)요 착취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조 말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거두어들인 원납전(願納錢)과 같은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니겠는가?

조선조에 있었던 화양묵패(華陽墨牌) 또한 마찬가지다. 노론의 영수 우암(尤庵 宋時烈)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당시의 화양동 서원은 오늘날의 참여연대만큼이나 세력이 막강했던 모양이다. 어떤 거절할 수 없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일정한 금액을 정하여 지정한 날짜에 기부하도록 검은 도장을 찍은 고지서를 발행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화양묵패(墨牌)였다. 이 묵패를 받은 사람은 전답을 팔아서라도 지정한 날짜에 지정한 대로의 기부금을 마련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서원 마당에 붙들려 나와 어떤 곤욕을 치를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그만큼 서원의 세력은 관아(官衙)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컸다.

이에 대해 매천야록(梅泉野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허경진 역). "서원을 책임지는 자들은 묵패를 이용, 평민을 잡아다가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빼내니, 남방의 좀이라 불렀다." 껍질을 벗긴다든지 골수를 뺀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심했다는 뜻이 아니겠나 싶다. 매천은 시대정신이 투철한 선비였으니 표현 또한 남달랐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여하튼 대원군에 의해 서원이 철폐되는 계기를 제공한 것도 결국은 이 묵패의 폐단 때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 묵패는 조선조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해방 이후 반탁이냐 찬탁이냐로 나라 안 정국이 극도로 어지러운 때에 의혈남아(義血男兒)로 유명한 김두한(金斗漢)이 우남 이승만의 부름을 받고 이화장엘 갔다. 이승만은 친절하게도 반탁투쟁에 앞장서 있는 그의 용기와 애국심을 치하하고 나서 얇은 사각봉투 하나를 건네면서 잘 싸워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김두한은 이화장을 나선 후에 이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먹 글씨로 쓴 `만(晩)`이라는 사인만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을 뿐 아무 내용도 없었다.

이승만으로부터 거금의 활동자금이라도 받아들 줄 알았던 김두한은 실망한 채로 `만`자 사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이승만이 허락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장안의 거부들로부터 자금을 얻어 쓰면 되겠다 싶었다. 태창방직 사장 백낙승, 현금 갑부인 민대식, 화신백화점의 박흥식 등을 찾아가 `만`자 사인을 들이밀고 돈을 요구하였다. `묵패`로 활용한 것이다.

강제로 돈을 빼앗긴 이들은 며칠 후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함께 모여 수도(首都) 치안 책임자인 창랑(滄浪) 장택상을 찾아가서 항의 겸 하소연을 하였다. 이들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창랑은 김두한을 수도청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갑부들과 김두한은 창랑 앞에 마주하고 앉았다. 김두한은 말없이 품속에 있는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이때 백낙승이 벌떡 일어나 창랑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봐요! 창랑! 그 돈은 우리가 기부한 것으로 해 주시오." 그러자 다른 부호들도 일어서면서 똑같이 소리쳤다. "맞습니다. 그건 우리가 반탁활동에 쓰라고 기부한 겁니다." 실록 소설(이룡)에 나오는 얘기다. 이 얘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묵패의 무서움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듯하니 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행하는 기부금 모집 안내 공문은 왜 묵패가 아니겠는가? 다른 모든 지자체(地自體)가 이를 모방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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