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이익 대변자 역할 상실 제 위치 찾아 책임 다해야

필자는 1970년대 말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국민들은 극단적 개인주의와 극단적 평등주의, 극단적 이기주의와 극단적 책임회피, 극단적 자기소외와 극단적 자기확대, 극단적 무관심과 극단적 참여욕구 등과 같이 극과 극을 잇는 정치적 요구와 이익추구로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식의 반(反)정치적 정치행태를 표출시키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당은 이러한 모순적인 정치적 현실을 조화 있게 해결해 나가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흐르는 물을 삽으로 뜨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정치를 신정치(new politics)라고 규정 짓고 유권자들의 반정치(anti-politics)적 의식과 활동에 대응하여 정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서양학자들의 신랄한 비판을 토대로 쓴 글이다. 30년이 지난 오늘, 70년대의 정치현실이 고스란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드는 요즈음이다. `월`가의 소요에서부터 무소속의 서울시장 당선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 양상이 70년대의 미국정치나 유럽정치를 보는 것 같아서다.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고 무당파(無黨派)는 늘어만 가는데 정당은 이러한 추세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여전히 삐그덕거리는 낡은 의자에 앉아 신문만 뒤적이고 있다. 정당이 국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래알 같은 1%의 이익을 통합하여 대변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엉거주춤하고 있는 사이 그 1%의 이익들은 저마다 자기지분을 가지고 집단화하고 있는 현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자 이 당 저 당 할 것 없이 무슨 새로운 탈출구를 찾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고는 그 출구가 제대로 찾아지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당에 대한 인식부족에 있지 않나 싶다. 정당은 왜 존재하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 말이다.

 지난번의 서울시장 선거 당시 민주당이 보여준 선거대책을 보면 그들의 의식수준을 알 만하다 할 것이다. 무소속 후보가 다른 무소속 후보와 경선하는 것이야 그들의 자유다. 정당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당내경선에서 당선된 후보를 무슨 연유로 또다시 무소속과 경선을 하게 하는가? 무소속 후보는 누구로부터 경선되어 정당 후보와 함께 경선하는 것인가? 정당 후보를 지지해 준 당원들의 표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정당이 정당이기를 포기하는 광대 짓이라 할 것이다.

 야권 통합이라는 개념은 야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당과 정당의 통합 또는 정당이 재야단체를 흡수하거나 정당이 재야단체와 힘을 합해 새로운 정당을 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정당이 재야단체의 특정인물과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가? 이런 발상이야말로 반정당(anti-party)적인 발상이요 반(反)정치적인 정치행태라고 할 것이다. 국민들이 정당을 외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독자적인 후보도 내세우지 못하는 불임정당이 되고 말았다. 정당이 지니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기능인 공직후보 선출기능도 공직 담임기능도 새로운 인물 충원기능도 모두 포기하고 말았으니 앞으로 어떻게 정당으로 존립할 근거를 찾을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나라당 역시 정당기능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여긴 지 오래되지 않았나 싶다. 정당 후보 공천을 당 안에서 하지 못하고 당 밖의 사람을 동원하여 심사하고 결정하여 왔으니 말이다. 이 또한 반정당적인 정치행위였다. 정당을 하면서 자신의 정당을 믿지 못하는데 어느 누가 그 정당을 믿고 지지를 보내겠는가? 정당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늘에서처럼 국민들이 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무당파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모두 정당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자금법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정치적인 존재의 표상으로 자리 잡은 시민단체(NGO)는 얼마든지 한 손에는 채찍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금을 긁어모을 수 있다. 이에 반해서 정당은 단 한 푼의 정치자금도 모금할 수 없으니 활동영역의 경쟁에서 정당이 시민단체에 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또한 정당이 스스로 해결하면서 본연의 위치와 역할을 찾아 시민단체의 반정치적 행위의 영역을 축소시켜 나갈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정당의 활력을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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