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생전에 강연하던 내용의 일부가 TV광고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최초로 선박을 외국에서 수주했던 일화를 이야기 하며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육성 멘트가 이어진다. 정주영회장의 ‘긍정적인 사고’가 현재의 현대그룹을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었음과 아울러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국민들에게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려는 암묵적인 의도가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고’가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많은 지도자들이나 경영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 삶의 덕목중 하나가 되었다. 나도 잘 될 수 있다는데 뭐 나쁠게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처한 지금의 삶은 그렇지가 않다. 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삶의 의미가 없어 보인다. 내가 진 짐이 가장 무거운 것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고통은 나에게 직접적이지 않으므로 타인의 고통은 미약해 보인다. 내가 겪는 고통이야말로 최고의 고통이다. 고통은 나의 직접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가장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삶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보면 긍정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 빠진 나를 보면서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긍정적인 사고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그 희망은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하는 환상일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긍정적인 사고는 사뭇 무모한 희망일 수도 있다. 삶은 고(苦)라 했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현실의 어려움이 마인드 컨트롤를 통해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어려운 현실은 몇 가지 긍정적인 언어나 다짐으로 쉽게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을 은폐하고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이 된다. 그것은 단지 상황이 긍정적으로 전개되기를 바라는 믿음이고 위선적인 행위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 사전에겐 불가능이란 없다’거나 ‘오늘은 뭐든지 잘 할 수 있다’거나. ‘나에게 좌절이란 없다’거나, ‘행복한 미래가 나를 기다린다.’ 등등의 구호를 외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난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숨기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한 것은 자신의 불굴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만약 이를 ‘긍정적인 사고’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석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사고’는 위선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긍정적인 사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긍정적인 사고’를 가장한 구호로 현실을 덮어버리고 잘 될 것이라고 믿는 맹목적인 믿음을 ‘긍정적인 사고’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보다 긍정적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될까? 나는 긍정적인가?

‘주변사람 중에 매사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과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누구를 친구로 삼고 싶으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사람과 친구를 맺고 싶다고 대답한다. ‘지금 자기 자신이 처한 삶의 현실을 보면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가’ 물으면 80% 정도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항상 고단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따라서 내가 처한 삶은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의 태도는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끔 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 된다. 그렇지만 사람은 부정적인 것을 싫어한다. 부정적인 표현은 진실에 가깝다 하더라도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는 점에서 배척된다. 만일 내가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조만간 내 주변에 있던 사람은 모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긍정적인 유전자로 각인 되어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200만년의 진화를 거듭해 왔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어렵다고 생각되지만 조상이 처했던 환경보다는 어렵지 않다. 그 조상의 조상이 처한 환경은 더욱 어려웠음은 자명한 일이다. 만약 나의 조상 중에 한 명이라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삶을 포기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 내 조상의 긍정적인 유전자가 200만년의 시간을 넘어 나에게 각인되어 있다. 생명력을 가진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긍정적이다. 만약 부정적인 생명체였더라면 이미 지구상에서 도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매우 긍정적인 존재이자 특별한 존재이다. 다만 나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200만년을 진화해 온 경쟁적 관계라는 점에서 많은 부담이 된다. 하지만 내 자신의 존재가치가 소중한 것처럼 타인도 나와 동등한 관계임을 인정하게 될 때 정상적인 관계가 설정된다. 이때부터 ‘긍정적인 사고’의 위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나 유전학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에너지로 뭉쳐진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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