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꼴리는 대로 하세요’에서 ‘인생을 연극’이라고 했다. 즉 잠시 무대(세상) 위에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동안 활개치며 안달하지만 얼마 안 가서 잊혀지는 가련한 백치들의 무의미한 광기란다. 필자 역시 한국을 무대로 연기하는 한 가련한 배우에 불과하지만 자전하는 지구가 23.5도 기울어서인지 인간의 마음이 덩달아 삐딱하곤 하는 것을 보면 멀미를 느낀다. 지구본을 바로 세우면 광기가 멈출까?

신묘년 새해는 대통령의 삐딱선 연출로 벽두부터 온 국민이 광란의 연극에 빠져드는가 싶다. 당초의 시나리오는 없는 것이니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하여 연기를 하자고 하는가 하면, 잠시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아예 무대까지 새로 바꾸잔다. 배역을 맡은 국민들은 언제 또다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지 불안하다.

그런데 없어졌다던 당초의 시나리오는 다시 발견돼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어졌다. 대통령과 측근 대변인들이 과학벨트에 대한 언급이 공약집에 없다고 둘러댔지만, 2007년 대선 정책공약집과 권역별 공약집 ‘대전, 충남·북’편에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를 약속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초일류 과학기술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과학벨트의 필요성과 함께, ‘행복도시, 대덕연구단지, 오송·오창산업단지를 하나의 광역경제권으로 발전시켜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육성한다’는 내용과, ‘과학과 기업이 하나 되는 행정중심 충청남도’라는 제목하에 ‘행정복합도시의 기능과 자족능력을 갖추기 위해 과학벨트와 연계해 인구 50만 명의 도시를 만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시나리오의 사실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관람객으로 둘러댄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충청도 관객을 겨냥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니란다. 그러면서 연출(선거) 과정에서 혼선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긴급 양해를 구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나리오는 정치가가 아닌, 4월 이후에 위촉될 과학전문 시나리오 작가(과학벨트 추진위원회)가 공정하게 쓸 거라며, 그 작가가 충청도민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아리송한 말을 덧붙인다. 마침내는 이러한 절차를 밟아야 충청도로 낙점을 했을 때 다른 지역의 반발을 덜 수 있는데 왜 내심 생각해주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멍청(?)하게 몰라주냐고 되레 서운해한다. 그 예로 첨단의료복합단지도 그랬고, 세종시도 그랬다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분야의 연구환경을 구축하고(거점지구), 여기에 비즈니스를 융합하여(기능지구), 국가경쟁력을 증폭하고자 조성하고자 하는 권역을 말한다. 이 거대한 사업에 소요되는 총비용은 2015년까지 총 3조5487억 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는 3000여 명의 인력을 수용하는 대규모의 기초과학연구원이 신설되고(6500억 원), 세계적으로도 드문 75종의 최첨단연구장비가 마련되며(2157억 원), 7년간 막대한 연구사업비를 투입하고(2조175억 원), 7개의 해외연구기관 및 연구인력을 유치하게 된다(1790억 원). 그리고 중이온가속기와 같은 대형기초연구시설 건설(4600억 원), 첨단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기업 유치(90억 원), 해외우수인력의 정주환경을 구축하는 것(120억 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선행되어야 할 부지 매입 및 도시기반시설 비용은 아직 입지 미선정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대통령은 첨복단지나 세종시처럼 과학벨트에 대해서도 몇 개의 시나리오를 내놓을지 모른다. 충청판 시나리오 하나로는 낙점해 봐야 생색도 안 난다고 볼 것이다. 더욱이 내년에 전국 규모의 연극제(총선, 대선)가 있지 않은가? 이에 연극인(유권자)이 많은 지자체들이 난리들이다. 그래서 경기판(과천) 시나리오, 전라판(광주, 새만금) 시나리오, 경상판(포항)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대통령을 흉내 낸 이 시나리오 작가들은 채택이 되든 안 되든, 내년의 큰 연극제를 위하여 이름이라도 걸어 놓으려고 한다. 염불을 따라하는 입으로 잿밥의 알갱이를 세고 있으니, 대통령의 공약도 공염불이요, 지자체들의 광기 어린 염불도 공염불이다.

공염불만 외는 나라는 미래도 희망도 없다. 향후 모든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국론분열과 지역갈등이 만연하여, 마침내는 승리한 곳도 통한의 파토스를 맛본다. 그런가 하면 첨복단지처럼 대통령의 입김 하나로 단순무식하게 정치적 분양을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였던가, 과학벨트를 두고 충청도에서는 ‘사수하자’고 외치는데, ‘행님정치’의 산실인 포항에서는 벌써부터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나풀거린다고 한다.

황인호 대전 동구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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