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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분재의 역습

2011-02-23 기사
편집 2011-02-22 06:00:00
 김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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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장점이라 생각하던 것이 때로는 자신을 묶어버리는 장애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필자는 수년 전 지인으로부터 매우 잘생긴 소나무 분재를 선물 받았다. 필자가 평소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을 지인이 알고 큰 맘 먹고 선물로 보내준 것이다. 소나무 같은 상록목사(常綠牧師)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품격 있는 목사, 신뢰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로 든든히 서 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배어 있는 소나무 분재는 필자의 기쁨이기도 하며 동시에 사명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드디어 소나무 분재 돌보기가 시작되었다.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시원스레 이루어지는 베란다에 주소를 정하고 나름 열정을 가지고 돌보았다. 소나무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그 푸르디푸른 기상과 꿋꿋한 자태로 응답해 주었다. 달과 해가 다르게 성장하는 소나무 분재는 사방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채워진 도시생활에서 경험하기 힘든 청량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제법 분재를 다룰 수 있다는 일말의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지만 소나무 가지 부분이 마치 가을 낙엽이 지듯이 서서히 색깔이 변하고 힘을 잃어가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내심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평소 하는 대로 물주기를 반복하였다. 이상하게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차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생각하며 찬찬히 살피는 가운데 그 원인을 찾아내게 되었다. 원인 제공자는 소나무의 형태를 관상용으로 만들기 위하여 원줄기와 가지 하나하나를 칭칭 동여맨 크고 작은 특수목적 철사였다. 소나무가 멋있게 보이도록 분재원에서 작업할 때 치밀하게 감아 놓은 철사가 소나무의 자유로운 성장을 억제하고 방해하였다.

아뿔싸 소나무 분재의 부가가치를 높이려고 의도한 것이 어느 시점을 지나자 부메랑처럼 도리어 소나무의 고통이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주목한 필자는 날을 잡아 옭아맨 철사를 제거하여 소나무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의식을 치렀다. 분재원에서 작업할 때 얼마나 철저하게 동여매었는지 제거하는 데 인내와 섬세함이 필요하였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어떤 틀을 스스로 채용하여 다져 나간다.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스펙(Specification)을 쌓는다. 때로는 이력서를 화려하게 채우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차별성을 두어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과 무늬를 만들어 넣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성형수술까지 동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땀 흘려 번 돈으로 자신의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하여 투자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활동하실 때 ‘바리새파’라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의 기득권층으로서 많은 소유와 지식을 쌓아 다른 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소유와 지식은 타인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기고만장하여 막상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는 데 실패하였다. 남보다 많이 가졌다고 하는 자부심과, 남보다 많이 배웠다고 우쭐거리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으로 기울어진 생각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과 편견 없는 만남을 기대할 수 없다. 남들보다 잘 알고 앞섰다고 확신했기에 다른 이들과의 마음 열린 소통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이 지극한 나머지 도무지 독립시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내, 내 직업에 대한 남다른 긍지와 자랑이 지나쳐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보람을 누리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닐 것이다.

조물주께서 우리나라에 주신 선물 중에서 가장 복된 것 중의 하나가 단일민족의 혈통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라 생각한다. 단일민족의 정신이 투철했기에 끈질긴 외세의 침입을 당당하게 막아낼 수 있는 저력을 나타내 보일 수가 있었다. 그런데 비뚤어진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배타성은 다민족사회를 지향하는 글로벌시대에 걸림돌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제 계절의 경계선도 무너지고 있다. 봄이 오는 것 같은데 어느새 여름이 되고, 가을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데 벌써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함을 반복하여 경험한다.

사람에 관한 문제든, 자연만물에 관한 문제든 경직되어 굳어진 생각을 뛰어넘는 지혜가 절실해진다.

살아갈수록 인위적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계속적인 축복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필자 역시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로서 어지러운 땅의 소리에 가리어 하늘의 음성을 놓쳐버릴까 조심스럽다.

오정호 대전시기독교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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