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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과 체벌 사이 고민하는 교사

2011-02-19 기사
편집 2011-02-1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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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예산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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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와 서울시 교육청이 교내 체벌금지령을 내리면서 학생 인권과 교권 침해 양날의 칼, 체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행사 뒤풀이나 사적인 모임의 자리에서 학부모나 지역주민 또는 지인들에게서 요즘 들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학교에 체벌을 없애면 제대로 교육할 수 있겠어요?”, “요즈음 학생들은 예전과 딴판이라는데 체벌 없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겠어요?”

명쾌한 대답을 주기에 무척 부담스러운 질문들이다. 수도권으로부터 불어오는 학교현장의 체벌 금지 조치로 대한민국 국민들과 교사들의 고민과 우려의 소리가 높을 듯하다.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 이는 학생이든 성인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존중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체벌 없이도 교사와 학생 간에 신뢰와 사랑으로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현장, 행복한 표정으로 공부하는 학생과 흐뭇한 마음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교사….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꿈같은 교실 풍경이다.

옛날 이야기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부모님께서 자식을 잘 가르쳐 달라고 선생님께 회초리를 한 묶음씩 가져다 드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회초리는 위협적이고 거부감을 주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훈육의 대명사로서 마음을 일깨우는 도구였다.

‘회초리’와 ‘매’가 주는 어감이 사뭇 다르듯 이참에 ‘체벌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를 긍정적인 의미로 담아낼 수는 없을까’ 불현듯 드는 생각이다.

어디선가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세 단계 훈계에 대하여 읽은 적이 있다. 1단계는 ‘꾸중’이고, 다음 단계는 ‘야단’이며, 마지막 단계가 ‘매’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에게 있어 ‘꾸중’은 ‘잔소리’로, ‘야단맞았다’는 ‘혼났다’ 로, ‘매를 들다’는 ‘패다’로 표현되기 일쑤다. 이는 ‘힘 있는 자의 가해’와 ‘힘 없는 이의 피해’로 표현이 은연중 바뀌어 있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한 이분법으로 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꾸지람과 제재 없이 칭찬만 하며 가르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하고 올바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교육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타이르고 야단치고 때로는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학생을 위한 올바른 행위일 것이다.

교사들은 부단히 수업기술을 연마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며 열심히 공부하며, 학부모와 지역사회는 교육활동에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하여 우리 미래의 꿈이요 희망인 인재를 육성해 가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랑의 매는 없다’라며 어떤 형태로든 체벌은 학생의 인권침해라고 주장하지만 과연 지금까지 학교현장에서의 교사들은 학생 인격을 모독하는 가혹한 체벌 행위만을 했다는 말인가?

교사와 학부모는 우리 학생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 Zero-Sum 게임을 하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동일한 목적으로 Win-Win하는 협력 관계임을 생각해 볼 일이다.

체벌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거부감을 느끼는 데에는 교사들의 책임도 있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으며, 학부모들의 왜곡된 자녀사랑에서 기인될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지극한 마음과 교육현장에서 교사로서 해야 할 직분을 이행하는 사이에서 서로의 존중심과 신뢰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시대의 화두가 되어 있는 ‘소통과 배려’는 우리 교육계에서도 절실히 요청되는 말이다. 배려와 존중, 사랑과 신뢰는 부모가 교사보다 교육수준이 높다고 해서, 교사가 학생들이 미성숙하고 어리다고 해서 함부로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체벌 일체 금지가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가, 교사의 교권을 존중하면서 교사의 감정적 체벌을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그리고 때로 잘못을 행한 학생들이 교사의 달초(撻楚)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훗날 큰 인물로 성장하는 개연성(蓋然性)은 없는 것일까.

평생 교육의 길을 걸어온 한 사람으로서 교육현장을 고운 눈으로 바라봐 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과거 회초리를 싸리나무가 아니라, 동의보감에 나오는 대로 맞아도 상처가 덧나지 않고 빨리 아문다는 뽕나무로 만들었던 부모의 마음을 교사들은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명호<예산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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