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추위가 매섭다. 지인들과 모임에서 “덥지 않은 여름과 지속되는 한파를 새로운 빙하기라고 한다더라, 정년퇴직 후 동남아로 은퇴 이민을 가야겠다”는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따뜻한 그곳에서 온 한 필리핀 이주여성이 떠올랐다. 그녀가 몇 달 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필리핀을 자연이 아름답고 따뜻한 관광지로 생각하고 동경하지만 자신은 한국을 발전되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살기 좋은 나라로 동경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동일한 상황이나 사건을 자신이 경험한 것에 비추어 다양하게 인식하고 해석한다. 베트남과 필리핀 같은 동남아 국가의 사람들은 유명한 관광 국가 사람으로 보느냐, 농촌총각에게 시집오는 결혼이주여성의 국가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그들을 보는 시선은 확연히 달라진다.

필자가 교편을 잡고 있는 우송대학교는 38개국 1200여 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공부하는 다문화 캠퍼스다. 이러한 학교 상황으로 인해 우송대학교 재학생들은 외국인이나 다문화가정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대학 자체도 외국인과 다문화가정에 대해 관심이 높다. ‘다문화교육센터’를 운영하면서 결혼이주여성들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에 앞장서기도 했고 지난 학기에는 유아교육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다문화가정 유아기 자녀를 위한 캠프를 실시하기도 했다. 한국어 교육을 받은 결혼이주여성들은 또 다른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흐뭇한 일도 생겼다. 이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위탁하여 한국어 교육만이 아니라 자녀양육, 부모교육, 다문화이해교육 등의 사업을 실시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일들을 선뜻 하겠다고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다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시각이 근간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막연히 도와주고, 배려하고, 챙겨야 하는 복지 의무 대상자가 아니라 그들이 역량을 개발하여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유능한 구성원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결혼이주여성의 불행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안타깝고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생각하면서 분개하기도 했다. 그녀들도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고 싶어서, 그녀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국에 첫발을 디뎠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한국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서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그런 그녀들의 꿈을 존중해 준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잘 살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다문화가정을 위한 일이 아닌가 싶다.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키워 다문화가정을 위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베트남 여성, 재혼한 남편에게 시집와서 1년 만에 남편을 잃었지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마음 따뜻한 필리핀 여성, 자매가 모두 한국으로 시집와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중국 여성들의 사례 등. 낯선 환경을 이겨내고 위풍당당한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살며 자신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가꿔가는 이주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전후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최초로 원조를 주는 국가로 짧은 시간에 발전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힘은 인재양성을 강조하는 교육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글로벌인재를 원하고 있다. 글로벌인재는 단순히 고도의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분야와 다양한 문화를 어우를 수 있는 통섭적 인재이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은 미래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로서의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별한 능력은 없으나 마음으로나마 노력하고 있는 필자가 관련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나게 될 다문화가정 여성과 자녀 중 미래에 베트남과 한국, 중국과 한국 그리고 또 다른 국가들 간의 교육·정치·문화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전문가가 나오는 상상도 해 보게 된다. 지난 학기에 실시되었던 캠프에서 약 7개국의 다문화가족들이 4종류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처음에 어색했던 가족들이 마지막 날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다문화가정이 사회면 기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 발전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음 기대해 본다.

그들의 ‘코리안 드림’에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한국이 꿈꾸는 ‘코리아 드림’도 이룰 수 있다는 진실을 이젠 깨달을 때가 됐다.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은 모든 고통과 추위를 잊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성원경 우송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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