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2010년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최초 발생 이후 26일 현재 전국 62개 시·군으로 확대됐다. 현재 전국 소, 돼지 25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 매몰되었으니 100마리 중 20여 마리가 땅에 묻힌 셈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흙더미들이 계속 늘어나 동네가 마치 공동묘지 같다는 얘기까지 있어 이제 국내 축산업의 기반이 전례 없이 심각한 위기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특히 이번 거리에 관계없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휘젓고 다닌 점을 볼 때 감염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농장(외국인) 종업원, 수의사, 인공수정사, 사료회사 직원, 가축출하차량, 사료수송차량, 도축수송차량 등 너무나 많은 매개체가 빈번하게 왕래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매사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서 축산업 종사자와 가축의 이동을 철저히 통제하고 예방백신도 즉각 조치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방역체계는 초기대응과 예방백신 대책 등 계속 후속 조치에 급급해 온 감이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감염매개체와 경로에 대해 단순하고 안이하게 판단한 결과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초기 발생은 천재(天災)였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진행과정은 분명히 인재(人災)였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초기 발생을 예방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감염 전파에 대비하는 철저하고도 입체적인 차단 방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산군 경우에도 가축 농가별로 철저한 차단 방역과 함께 필수 관찰대상 259개 매개체 요소에 대해 지속적으로 동선을 추적, 관리해왔지만 안타깝게도 한 농가의 양성 반응 판정 결과는 차단 방역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동안 살처분 조치를 최선의 방법으로 인식해오고 있는 가운데 많은 축산 종사자들이 처분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충격은 매우 심각했다고 본다. 게다가 비좁은 땅에 매몰한 250만 두가 과연 토양과 지하수를 어떻게 오염시킬지 심히 걱정되며 특히 어떤 변종 전염병을 발생시킬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따라서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한 축산 농민단체는 “지금까지 우리는 돼지를 판 게 아니라 항생제에 찌든 양심을 팔아왔다”고 고백했다. 지금과 같은 방법의 생태계 파괴와 공장식 과밀 사육, 비위생적 사육환경 등은 인간의 과욕이 빚어낸 결과로 장차 어떤 질병을 유발시킬지 심히 우려된다.

국가 방역 체계를 새롭게 굳건히 다짐은 물론 장기적으로 보아 지금까지의 악순환을 끊고 축산과 농업이 선순환을 이루는 동물 복지 차원의 친환경 축산으로 가는 길이 동물과 자연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방법이다.

이제 2주 후쯤이면 설 연휴 귀성객들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방역에 미칠 심각한 악영향을 고려한다면 지자체별로 평소 과거와 같은 귀향 방문을 자제토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29일 일본 미야자키 현에서는 28만여 두의 소, 돼지를 살처분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가축들의 넋을 위로하는 이른바 ‘구제역 위령비’ 건립식이 있었다. 전국의 축산업자들이 모여 세운 위령비에는 구제역 살처분 과정에서 고통 중에 생명이 끊어진 수많은 가축과 마음속 깊이 상처를 입은 생산자들에 대한 깊은 사과, 그리고 대참사를 반성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삼자는 내용 등이 기록돼 있다.

이제부터는 구제역이 더 이상 연례행사가 돼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간의 초기 대응부터 진행과정에 이르기까지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국가 차원의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농업 생산액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축산업 문제는 비록 해당 농민들만이 아니라 농촌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국가적 차원의 재난 수준에 걸맞은 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모두 구제역이 하루속히 종식되기를 바라면서 이 시간에도 최악의 환경에서 사투를 벌이는 축산농가, 지역공무원, 시·도 및 중앙부처 공무원, 주민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와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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