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승 (금강물환경연구소 소장)

십수 년 전에 어느 고갯마루 외딴곳에 김선생댁이 있었다.

그 집 남쪽 처마 낙숫물은 섬진강으로, 북쪽 처마 낙숫물은 금강으로 흘러든다. 그곳이 장수군 신무산 금강 발원지의 어디쯤이다. 낙숫물 소리를 생각하면 징소리처럼 공연히 가슴이 설렌다. 강물은, 흘러 바다를 만나는 동안 쌀농사로, 밭농사로 땅과 교감한다. 먹을거리를 위해 사람이 강가로 몰리던 옛일은 너무 당연하다. 사람이 물가에 가고 싶은 것이 먹을거리 때문만은 아니리라. 물은 생명인 것이다.

잘못된 연상으로 용어 변질

올해 여름에 그 금강 상류 지천에서 민물 태형동물이라는 럭비공만 하고 아주 징그러운 모양의 수생생물이 발견되면서 지역 사회에 관심거리로 대두된 적이 있다.

‘태형’이란 한자로 이끼모양이란 뜻, 실제로 이 동물은 개나 소 같은 큰 동물이 아니고 뭉쳐서 부착된 채로 사는 아주 작은 촉수벌레이다. 그래서 우리말로 이끼벌레가 된다.

이전에 다른 곳에서 발견되고 조사된 적이 있지만, 이 생물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첫인상이 좋을 수 없다. 생소한 이름에 혐오스런 모양이 겹쳐지면, 혹시 환경오염과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고 환경오염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 모두가 과학자는 아니므로 과학적 사실이 일반 사람에게 전달되려면 일정한 시간뿐만 아니라 약간의 번역(?)이 필요하다. 미국 버틀러대 리브스 교수는 과학적 언어의 번역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부 주관적 판단이나 편견을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언어)이란 무엇인가.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가 산더미처럼 만들어지는 요즈음, 새로운 용어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정교한 언어의 사용은 인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우리의 문화나 삶의 방식을 언어와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중국 옛 사상가 왕필은 ‘말이란 그 뜻을 파악하고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어머니! 각자가 사용하고 있는 ‘어머니’ 그 뜻의 일부는 같고 일부는 다르다. 어머니란 각자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서로 다른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대 언어학자들은 ‘언어는 단순히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거꾸로 언어에 의해 우리의 생각이 형성되고 명료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17세기경 로버트 훅이란 사람이 현미경을 발명하면서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균도 관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들은 눈에 잘 띄는 현상에 관심이 더 많다. ‘동물’이라 하면 우선 쉽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개나 소를 연상하는 게 당연하다. 그 결과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적 용어의 의미가 경험에서 오는 선입관 때문에 변질되기도 한다.

일반 사람이 태형동물을 마치 큰 동물로 연상하지는 않을는지. ‘태형동물’보다는 ‘이끼벌레’ 이끼벌레보다는 ‘군집을 이루고 사는 작은 촉수벌레’ 이렇게 생각을 확장해야 적절하다. 잘못된 연상은 잘못된 생각을 만든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것을 경험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언어에 대한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는 좋은 번역과 함께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언어의 정확한 해석 중요

‘일 대 백’이란 어느 방송의 퀴즈 프로그램처럼, 어느 경우에는 다수의 의견이라고 꼭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특히 문제가 어려울수록 다수의 의견에만 우리의 판단을 맡길 수 없다. 물리학, 의학, 전자공학 등 그 분야를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들의 언어는 어렵다. 보통 사람에게 전달되기 위해 그들의 정보는 많은 중간 번역자를 필요로 하며, 일부 잘못된 번역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번역 목적이 다른 번역자끼리의 이기심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지식의 치우침은 결국 우리의 삶을 분리시키고 사람 간의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말에 대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예사롭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겨울이다. 추우면 두꺼운 얼음이라도 얼려 물 밑에 제 식구를 보호하는 그 금강 물의 지혜가 새롭다.

<금강물환경연구소 소장 김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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