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충북도립대학 조동욱 교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핸드폰은 내 편의가 아니라 상대방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없다. 한마디로 개 목걸이이다. 내가 어디 있든지 장소 파악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시도 때도 없이 나와 통화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수한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핸드폰이다.

핸드폰 받기 싫으면 문자로도 메시지가 날아오는 관계로 어디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곳이 전혀 없다. 그래서 그나마 이혼 안 당하고 살려면 제일 좋은 것이 퇴근과 동시에 핸드폰을 꺼 놓는 것이다.

이 경우 핸드폰이 꺼져 있는 관계로 피할 수 있는 술자리들은 상당 부분 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실 술자리도 맨 처음부터 술 한 잔 함께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상태라면 집사람에게 양해를 구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만취하더라도 연말특집 부부싸움만은 피할 수 있다.

그런데 평상시 그렇게 점잖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분이라도 술만 들어가면 어디서 용기가 나오는지 술기운에 전화를 걸어온다.

이 경우 함께 정을 나누자고 걸어오는 전화이니 안 나갈 수도 없고 더욱 중요한 것은 집에서 저녁식사까지 다 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말 나가기 싫은 것이 이런 술자리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퇴근과 동시에 핸드폰을 꺼 놓는 일이다. 이 경우 핸드폰이 꺼져 있는 관계로 나를 호출할 방법이 없어진다. 물론 집으로 전화해도 되지만 술 한 잔 먹자고 집으로까지 전화하는 사람들은 정말 없다.

그런데 이때 나에게 전화 건 분들의 핸드폰에 나오는 멘트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고객의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시 통화료가 부과됩니다”라는 멘트이다. 참으로 친절한 안내이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성질나는 게 바로 이 멘트이다. “고객의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까지만 요금이 부과 안 되고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 시 통화료가 부과됩니다”라는 멘트는 요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음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요금이 부과된다. 사실 상식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음성 사서함에 들어가 음성을 남겨야만 통화료가 부과되는 줄 알고 있는 이 상식을 통쾌하게 악용해 먹는 것이 바로 통신사업자들의 용의주도한 머리이다.

이런 식으로 통화요금을 부과한 돈이 연간 수천억 원은 족히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내가 핸드폰을 꺼 놓고 있을 때 나에게 전화한 무수한 분들이 나로 말미암아 통화료를 낸 것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 보면 정말 나야말로 죄인 중의 죄인이요 괴수 중의 괴수 아닌가 싶다. 내 핸드폰을 켰을 시 수없이 뜨는 캐치콜, 캐치콜, 캐치콜…. 이로 말미암아 선의의 피해를 입은 나의 절친한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만세이고 통신사업자 만, 만세이다. 그런데 어찌 이런 일이 통신계에서만 존재할까. 국가 정책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가지 쓰는 줄도 모르고 국가 정책에 멋도 모르고 당하는 수많은 순진무구한 백성들. 통신사업자에게 상세 내용도 모른 채 바가지요금 당하고 위정자들에게 이리저리 당하는 우리네 팔자가 그다지 좋은 팔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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