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청와대와 정부는 물론 여권 야권 할 것 없이 모두 충청도민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 주류는 충청권 여론만 바뀌면 세종시 수정안 밀어붙이기는 가능하고, 야권은 원안을 지켜내기만 하면 다가올 선거와 정국 운영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충청도민을 상대로 한판 여론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충청도민들의 주가가 오는 6월 2일 지방선거일 까지 연일 상종가를 무난히 이어갈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충청도민들은 전혀 즐겁지 않다. 지역민심을 아우르고 대변해줘야 할 권력과 정치권이 오히려 법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7년 묵은 최악이자 최대의 국가 현안을 이제 와서 충청도 민심에 달렸다며 매달리기 때문이다.

충청도민의 주가를 바닥에서 상종가로 끌어올린 데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말 한마디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세종시 수정에 대해 설득하고 동의를 구한다면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해야지 나에게 할 일이 아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제 친박(親朴·친박근혜)계 설득은 물 건너갔다. 수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충청민심을 확실히 잡아서 여론전에 승리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분위기로 급반전 했다.

여기서 정부가 국회가 아닌 국민, 특히 충청도민을 상대로 여론전에 돌입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같은 여당 내 친박계의 수정안 반대 입장이 확고하고, 야당 또한 반발이 갈수록 거센 상황에서 법 개정을 통한 수정안 관철은 불투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론몰이로 어떻게든 세종시에 대한 지지율을 50% 이상 끌어올림으로써 친박계와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외곽 때리기 전략의 제1의 방책으로 충청민심 설득에 모든 것을 다 걸기로 한 것이다.

정부와 여권이 충청여론을 진정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여론몰이 이전에 몇 가지 사항부터 이행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충청여론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여론이 원안 고수로 기울 경우 수정안을 포기하고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여론이 좋아질 때까지 한없이 기다린다는 것인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수정안과 원안의 절충안을 다시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차기 정권으로 넘긴다든지 뭔가 차선책도 있어야 폭넓은 여론을 수렴할 텐데 무작정 단판승부를 내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정부와 여권은 친박계에 대한 설득 노력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같은 당 사람들조차 이해시키지 못하는 수정안과 변변치 못한 정치력으로 어떻게 충청도민을 설득한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종시 수정안 입법화 절차는 가급적 빨리 진행해야 한다. 한나라당 내에서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룬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지만 이는 자가당착이다. 여론수렴 과정을 생략한 채 신속히 수정안을 만들었듯이 입법처리 과정도 서둘러야 맞다. 정운찬 총리도 “논의를 오래 끌면 사회적 혼란이 된다. 우리사회가 늪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세종시 여론몰이로 인한 갈등과 분열의 심화는 또 다른 국력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월 국회처리가 안된다면 적어도 향후 구체적 처리일정이라도 밝혀야 한다.

신행정수도 건설법이나, 지금의 세종시 수정안(발전방안) 역시 충청도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태동한 정책이다. 건국 이래 최대의 국가대사를 충청도에 추진하면서도 충청도민은 주인이 아니었다. 세종시의 중심은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표도, 정운찬 국무총리도 아니다.

세종시 수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이번 선택만큼은 충청도민이 중심에 서야 한다. 충청도민은 역대정권으로부터 이미 두 번이나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1990년 3당 합당과 1997년 DJP 연합 당시 정국흐름을 주도하고 정권을 창출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도 축출 당했던 과거가 생생하다.

세종시 원안 고수나 수정안 지지를 떠나 더 이상 충청도민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다. 정쟁의 제물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세종시 수정안 여론수렴과정에서 충청도의 여론을 소중히 여긴다면 어떤 정치적 압박이나 압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충청인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주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충청도민이 내린 어떤 결정에 대해서도 겸허히 수용한다는 약속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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