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탄 지하철이나 내가 있는 건물에서 불이 난다면, 난 무사히 살아 나올 수 있을까?

불의의 재난에 직면한다면 나의 본능과 지능, 모든 역량을 다해 탈출을 시도하겠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9·11 테러로 고층건물이 붕괴하여 5514명이 실종 또는 사망하였고, 국내에서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34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대형 참사 뉴스를 접하면서 막상 내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04년 말 동남아에 쓰나미가 밀려왔을 때 약 30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데 비해, 동물은 고양이 한 마리만 죽었다고 한다.

이것은 신기에 가까운 동물의 생존본능을 잘 나타내 준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동물적 본능이 퇴화되면서 지능의 발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재난관리 전문가와 기관들은 수많은 재난으로부터 축적된 생존에 대한 경험적 사례에서 인간의 본능과 두뇌작용을 철저히 분석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불의의 재난상황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할지에 대한 전략과 매뉴얼을 제시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각종 재난의 유형을 구분하고, 각각의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한 법령을 제정하고, 재난관리 주체별로 역할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강제하는 한편,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많은 시책과 홍보에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사람들은 스스로 생존단계를 체감하는 간접체험(훈련)을 통해 일련의 본능적 행동반응에 입각한 대응요령을 익힘으로써 재난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재난재해에 직면했을 때의 행동패턴을 살펴보면 거부(지연),­ 숙고,­ 결정의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또한 각각의 단계에서 무기력, 마비, 공황, 집단적 사고, 과잉반응 등 다양한 본능적 대응행동을 보인다.

첫 번째, 거부 단계는 극도로 끔찍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닥친 재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의 지연은 얼마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두 번째, 숙고 단계는 무엇인가 끔찍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초기의 패닉(공황) 상태에서 벗어나 내가 직면한 상황이 모두 비정상적임을 인식하고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신중하게 체크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결정의 순간으로서 행동에 나설 때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재난이 닥치면 아무런 행동도 못 하고 의식이 나간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증폭된 불안으로부터 냉정함을 얼마나 빨리 회복하는가는, 평소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에 달렸다.

우리 소방은 인명존중을 최우선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난으로부터 인명을 손실 없이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은 복잡한 건축물 구조와 도시환경, 제한된 인력과 장비로 인해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재난의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5분 소방’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그만큼 오늘날의 재난 진행속도가 매우 빠르고 조금만 시간이 지연되어도 인명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몇 초가 소중한 재난상황에서 전문 구조대원이 자신을 구해줄 거란 믿음도 좋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위험에 처한 자신을 스스로 구조할 수 있는 구조대원이 되는 것이다.

냉동물류창고, 지하철, 고시원, 씨랜드 화재참사 등 대형화재 사고와 집중호우 및 태풍 등으로 해마다 많은 피해를 입고 있지만 그때마다 사후약방문식의 미봉책에만 그칠 뿐, 재난으로부터 진정한 해법의 교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부끄러운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말 그대로 ‘재난의 도시’에 무기 없이 내던져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재난의 불행에 맞서 어느 때보다 ‘생존’이라는 화두가 절실히 느껴지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생존을 위한 나만의 무기’는 과연 무엇이며, 갖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대전광역시소방본부장 박 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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