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레짐작해 알아서 기나 한·미 ‘윈윈’ 전략이 해결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벌이는 정치권의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이러쿵저러쿵 말은 풍년인데 정작 결론이 없다 보니 항로를 잃은 배처럼 방향을 못 잡고 있다. 또 사공은 어찌나 많은지 배(FTA)가 산으로 갈 지경이다. ‘오바마 바람’을 타고 FTA가 정가의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면서 여야 정치권이 갈팡질팡 이다. 비준동의냐, 재협상이냐를 놓고 정부·여당·청와대·야당 모두 혼란스럽다. 마치 스산한 가을 들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FTA 논란의 진원지는 오바마다. 대통령 선거기간 중 그는 “한국은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팔면서 미국차를 수천 대만 수입하는 것은 자유무역이 아니다”라며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했다. 또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 상·하 양원을 장악하자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미 의회의 비준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세워 FTA 재협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을 위해 친절하게 정지작업을 해줄 만큼 오지랖이 넓은 모양이다.

강행처리에서 한발 물러난 여당은 여야합의를 전제로 여전히 연내 비준 동의안 처리를 고집하고 있다. 야당은 선(先)대책과 재협상으로 의견이 갈려 오락가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재협상 시그널을 보내는 등 논란은 갈수록 태산이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인데 우리 정치권은 백가쟁명식 논쟁으로 사분오열 양상이다. 미국은 아직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 정치권의 성급함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 정치인의 안목이 국민의 눈높이와 늘 거리가 있어 그러려니 하면서도 국익이 실종된 ‘FTA 당쟁’에 실망은 커져만 간다. 초당적인 대처도 부족한 형편에 제각각 딴소리고, 당리당략에 아전인수식 말만 횡행한다.

오바마의 선거기간 중 발언 말고는 미국은 아직 공식적으로 FTA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우리 정치권이 지레짐작으로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국민만 불안하다. 오바마 측 인사도 “미국이 한 번도 자동차 재협상을 거론한 적이 없는데 한국이 먼저 재협상을 거론하는지 모르겠다” 며 오히려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정치인들이 곱씹어 보고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미국은 93년 통과시킨 캐나다·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까지 재협상 내지 추가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도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선입견이다. 오바마가 정권 인수 후 돌아가는 상황을 봐가며 대처해도 늦지 않을 텐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논란을 벌이는 모습에서 강한 자 앞에서 알아서 기는 약자의 비애감이 느껴진다. 정쟁의 정도가 지나쳐 국민이 불편할 정도다.

한·미 FTA는 원칙 속에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국가 간 조약이 체결됐으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비준동의를 밟는 게 원칙이다. 원칙이 흔들리면 대응논리도 빈약하고 후유증도 크기 마련이다. 협상의 번거로움은 둘째 치고 1년 2개월 협상기간 동안 1500페이지에 걸쳐 치밀하게 맞춰 놓은 협약서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먼저 외교 관례를 깨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한·미동맹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새로 출범할 오바마 정부도 국제 법을 어겨가며 재협상을 요구하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비준 동의안 처리가 1순위고, 재협상·추가협상 논의는 다음 수순이다. 비준동의를 포함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짜서 철저히 준비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비책이 소홀해 국익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그때는 국민이 뿔난다. 쇠고기 파동 때처럼 뿔난 국민이 촛불 들고 거리로 나서면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시킬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은 처변불경(處變不驚·변을 당해도 놀라지 않는다)의 자세로 한·미 양국경제가 ‘원윈’할 수 있는 큰 틀의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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