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다. 무쇠도 녹일 것처럼 이글거리던 한여름 태양도 가을 앞에선 맥을 못 춘다. 가을 문턱에서 초라할 정도로 사그라지는 태양의 위세를 보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태양은 지쳐 빛의 목발에 의지해야 한다.’라고 노래를 했다. 태양의 기세가 사윈 가을은 사람들에게 서정을 느끼게 한다. 불황, 실업, 반목과 갈등 등 모든 속된 것을 잠시 접어두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가을을 타지 않는 사람도 시상이 떠오르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을의 대명사는 뭐니뭐니해도 ‘독서’다. 긴 여름 책과 멀리하던 사람도 시월이 되면 책을 가까이하기 마련이다. 귀소본능처럼 등화가친(燈火可親)을 즐긴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양심이 께름칙해지는 모양이다. 독서는 마음의 밭을 비옥하게 만든다. 명작의 모티브가 되고 꿈과 희망,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인연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동서고금 독서예찬의 이유다.

책이 잉태시킨 세한도

책이 명작의 모티브가 되고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해준 좋은 사례는 추사 김정희(1786-1856)와 제자 이상적(1804-1865)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불후의 명작 ‘세한도’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추사가 책을 좋아했기에 가능했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돼 있을 때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유난히 책을 좋아하는 스승을 위해 중국에서 구한 귀한 책을 자주 선물했다. 모든 사람들이 권세와 이득을 좇는 세태에도 이상적은 유배에 처한 스승에게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추사는 황량한 유배지에서의 고독, 그리고 멀리서 정을 보내주는 제자의 따듯한 정을 주제로 세한도를 그려 제자에게 선물했다. 제자는 청나라 문인 16명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송시와 찬문을 받아 10m의 두루마리로 엮었다. 이렇게 해서 문인화의 정수 세한도가 완성된 것이다.

필자도 한 도예가와 맺은 책과 관련된 아름다운 인연이 있다. 어느 해던가 도예가의 집을 방문해 얘기를 나누던 중 그는 갑자기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뒤적이더니 한 구절을 읽어주는 게 아니던가. 마치 초등학교 교사가 제자에게 국어책을 읽어주듯.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 등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런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을 했다. …’

고 최순우 선생의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부석사 무량수전의 첫 구절이다. 쉬운 단어 선택, 수려한 문장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당장 그 책을 샀고 지금도 가끔 꺼내 읽는 책 중 하나가 됐다. 책이 길러준 심미안으로 다시 본 세상은 아름다웠다.

책으로 본 세상은 ‘행복’

그 책은 전통 예술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게 해줬다. 그 책을 마음으로 전해준 도예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도예가는 폐암으로 투병하다 두 달 전쯤 타계한 고 이종수 선생이다. 선생은 임종 직전 병실을 방문한 신부님에게 “세상에 태어나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가게 돼 행복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책을 늘 가까이했고, 책에서 본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현장에서 꼭 확인을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던 도예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책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준다. 지식과 교양, 희망과 꿈을 갖게 한다. 불후의 명작을 잉태시키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도 책 속에 있다. 깊어가는 가을, 책에서 행복을 느껴보자. 의미 있고 아름다운 ‘독서 이웃’의 인연도 만들어보자. 그러면 비록 경제는 어려울지라도 우리 생활문화는 보다 윤택해질 것이다. 이 가을 필자는 아마도 다른 책보다 이종수 선생이 읽어주시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을 가까이할 것 같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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