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전쯤 영국과 미국의 광부들에게는 카나리아가 필수장비였다. 카나리아는 갱내에 퍼졌을지도 모르는 무색무취의 유독가스 유무를 알려줬다. 카나리아가 소리를 내지 않는다든지, 갑자기 횃대에서 떨어진다든지 비틀거리면 갱내에는 유독가스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간단하지만 덕분에 많은 광부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정확한 방법이었다. 세인들은 이로부터 드러나지 않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알리는 사람이나 상황 등을 흔히 카나리아로 비유해왔다.

화학물질등으로 덮인 환경

지구온난화와 관련해서는 알래스카의 빙하가 카나리아 역할을 한다. 베링해를 사이에 두고 시베리아와 마주한 알래스카 시슈마레프 마을이 한 예다. 이 마을 주민들은 200여 년간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한다. 기온상승으로 지반이 무너져 더 이상 주거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 이주의 이유다. 사회경제현상에도 이는 적용된다. 순항을 거듭하던 기업이 한 순간에 몰락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되돌아보면 알아채지 못했거나, 알고서도 모른척했을, 몰락의 신호는 분명이 존재한다. 기업회생 전문가인 게리 서튼은 그 조짐을 ‘카나리아의 경고’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랜덜 피츠제럴드는 <100년 동안의 거짓말>이란 책에서 합성물질이 첨가된 식품이나 합성물질 덩어리인 약(藥)이 어떻게 건강을 해쳤는지 많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덧붙여 저자는 유해한 합성물질을 생산하는 회사들은 자사 제품 속에 함유된 ‘독성’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시종일관 끄집어내 보여준다. 독성이 강한 약을 복용하고 사망하거나 중병에 걸린 사례들이 독성화학물질이 유발하는 폐해를 보여주는 ‘카나리아의 경고’다. 미국 동부 강이나 이리호에서 집단으로 발견된 자웅동체 물고기, 자성화(雌性化) 야생동물, 음경 없는 악어 등등 역시 독성물질이 만들어낸 환경오염에 대한 또 다른 ‘카나리아의 경고’임에 분명하다.

먼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충남 서천에는 장항제련소가 문을 닫았다. 문제는 최근 몇 년 동안 인근 주민들 수십 명이 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주장은 장항제련소에서 배출된 중금속이 주변 땅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있다. 최근 1년 반 사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금산공장에서 14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유족들은 유독성이 강한 근무환경이 사망의 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해당 사업장 관련자들은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는 점이다. 결과만 놓고 볼 때 암발생이나 사망 등은 독성물질 폐해를 가늠하는 ‘카나리아의 경고’이기는 마찬가지다.

문명(독성화학물질)이 환경, 야생동물이나 인간에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를 파헤친 기념비적인 책이 <침묵의 봄>(1962년 刊)이다. 이 책에서 레이첼 카슨은 독성화학물질이 어떻게 환경 특히 야생동물과 인간을 파괴했는가 여실하게 지적했다. 반면 린다 리어의 <레이첼 카슨 평전>을 보면 카슨이 이 책을 저술할 때 독성물질 생산자의 예상되는 고소와 반발에 대해 얼마만큼 고민했는지도 알 수 있다.

독성피해 철저 예방•조사를

독성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논란은 생산자(유발자)와 피해자(환경보호론자)와의 숨바꼭질이다. 하지만 공평하지 않다는게 문제다.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경제논리를 앞세워 무해하다는 주장을 펴는 생산자의 외침에 밀리기 일쑤다. 결국 피해가 발생하고서야 인정한다. 더구나 잘못 인정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독성물질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는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독성화학물질의 피해에 대한 예방과 처방은 그리 쉽지 않다. 장비와 인력이 뒷받침되려면 가히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한 역학조사와 예방조치가 뒤따라야한다. 우리가 독성화학물질 피해를 시험하는 카나리아가 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되기 때문이다.<정치행정부 시청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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