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청백리를 꼽아 보라면 단연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일 것이다. 가인은 청빈한 생활과 대쪽 같은 자세로 정부수립 이후 우리 사법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법조인이 되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지 말고, 음주를 절제하고 마약과 화투 등의 유희에 빠져서도 안되며, 어떤 사건이든지 판단을 하기 전에 법정 안팎에서 의사를 표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평소 몸가짐을 강조했다.(‘법관 몸가짐론’에서)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만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법의 권위를 세우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 이같이 강직한 자세로 이승만 정권의 온갖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지켜냈다.

가인의 충고는 단지 법조인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모든 공직자에게 해당된다. 국회의원도 국민을 대표해 행정부의 잘잘못을 따지고 독주를 견제하라고 만들어준 자리로 대표적인 공직자이다. 따라서 그들도 매사에 깨끗하고 흠결이 없는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회의원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잠잠한가 했더니 다시 불거진 ‘국감향응’으로 국민들의 시선은 더욱 따갑기만 하다. 과기정위 소속 일부의원들이 대덕특구 7개 기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마치고 피감기관으로부터 향응을 받아 문제가 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예민한 시기라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것인지 당사자들은 사과를 하고 당에서도 강력한 징계조치를 하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잊을 만하면 다시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사과나 자숙이란 것도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 떠밀린 진정성이 없는 말장난이 아닌가 싶다. 지난 2005년에는 법사위 의원들이 대구에서 국정감사가 끝난 후 가진 술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으로 한 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 향응 파문과 관련 한나라당에서는 과기정위뿐 아니라 문화관광위에서도 식사대접을 받았으니 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 재수가 없으려니 우리만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문제는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잘못을 관행으로만 치부하고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민들은 국회가 정부기관이 나랏돈을 제대로 쓰는지 감시하기 위해 국정감사를 하는 줄로 알고 있는데 혈세를 같이 흥청망청 술 마시는데 탕진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잘못된 관행’을 없애는 데는 피감기관보다 우위에 있는 국회의원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가자고 해도 거절해야 마땅하다.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하면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라 교통비와 식비, 숙박비 등 일체의 경비는 국회에서 지급한다. 그런데도 국감을 가서 피감기관의 접대를 받았다면 국회에서 제공한 모든 경비는 개인적으로 챙겼다는 얘기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인데 뭘 그러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얼마 되지 않으니 다시 반납해 국고로 넣는 게 떳떳하지 않을까.

향응을 베풀어주는 피감기관도 문제다. 국회의원들이 서운하지 않도록 접대를 해야 뒤탈이 없겠지 하는 ‘보험용’이라면 과감하게 끊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특히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끝없이 제기되고 있는 이 때를 새롭게 변신할 기회로 삼고 나랏돈은 공돈이니 너도나도 쓰고 보자는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가인은 대법원장직을 떠나면서 “재임기간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법원 직원들에게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보수를 가지고 법만을 위해 살라고 하고, 모든 사법종사자들이 정의를 위하다가 굶어 죽으면 그것을 곧 영광으로 알라고 말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국회의원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라고는 않겠지만 적어도 믿고 뽑아준 국민들에게 사과할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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