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빛 바다 장관… 향일암 관음전 일출장소 유명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생각이 든다. 여름철 여행이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가을에 떠나는 여행은 어딘가 운치가 있다. 가을의 운치를 생각하다 문득 가볍고 진동을 잘 전해 거문고의 윗판 재료로 쓰이는 오동나무를 떠올렸는데 예전에 오동나무가 하도 많았다고 해서 섬 이름이 붙었다는 전남 여수시 오동도를 찾아가 보기로 하자. 3-4월이면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펴 관광객이 붐비는 오동도의 가을 풍경은 어떠할까.

호남고속도로를 나와서 순천IC를 지나 여수시 수정동에 있는 오동도에 닿았을 때는 이미 시계가 오전 1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전에서 3시간 30분 남짓 걸린 셈이다. 하지만 운전으로 인한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들떴다. 당장 눈 앞으로 에메랄드 빛의 물결이 물 비늘을 일으키고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느 곳까지가 바다인지 알수 없을 만큼 여수가 보여주는 바다는 반짝이는 보석처럼 가슴에 와닿았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편린들을 이내 사라지게 하는 초록빛 물결과 목덜미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이 여수를 찾은 이방인에게 반가움을 표하는 듯했다.

오동도를 가려면 1㎞ 남짓한 거리의 여수항 방파제를 건너야 한다. 관광열차가 운행되고는 있지만 열차를 타고 들어가기보다는 걷는 게 나을듯 싶어 그냥 섬 쪽으로 향했다. 걷다보니 바닷바람이 날라다주는 멋진 해조음이 귓가를 맴돌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상큼한 바다내음이 오동도로 연결된 방파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광경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손은 어느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책갈피에 끼워넣고 싶은 한 장의 그림엽서로라도 이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싶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방파제 길을 지나면 식물원이 눈에 들어온다. 야자수와 선인장을 비롯해 다양한 열대식물을 볼 수있는데 식물원을 지나 오른쪽을 보면 소나무와 대나무 등을 볼 수 있는 오동도 산책로가 보인다. 오동도를 한 바퀴 돌수 있는 이 산책로의 길이는 총 2㎞로 섬 정상으로 향해있다. 도중에 일출정과 자산공원이 있어 걷는 틈틈이 주위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는데 멀찌기 보이는 용굴과 코끼리 바위 등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해암절벽 주변에서는 추억을 담으려는 연인들이 디지털카메라 찍기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오후가 되니 제법 쌀쌀한 바닷 바람이 느껴졌다. 차에 오르고나서 초행길이라 잠시 헷갈려 엉뚱하게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돌산읍 향일암.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으로 한국의 4대 관음기도처 중 한곳이다.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면 매표소가 있고 바로 위쪽으로는 291계단으로 가는 길이, 다른 한쪽에는 평탄한 길이 나온다. 평탄한 길을 올라가다 보면 불경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데 쉬울 것 같아 선택한 평탄한 길에 뜻밖의 암초가 나타난다. 175㎝에 76kg인 필자가 지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다소 뚱뚱한 사람은 들어갈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비좁은 바위틈을 2개나 지나고서야 향일암 마당에 도착할 수 있다.

향일암에서 바라본 남해바다는 가슴을 확 트이게 하면서 세상사를 다 잊게 만들어준다. ‘이 곳이 영락없는 지상낙원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잠시 자연절경을 감상하고 둘러본 향일암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여느 곳과 별반 다르지 않게 대웅전과 관음전이 있는데 특히, 관음전은 일출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어느덧 여행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여수까지 온 마당에 국보 건축물을 보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여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로는 국보 304호인 진남관(鎭南館)이 있다. 향일암을 내려와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군자동의 진남관은 임진왜란 때 왜군 격파에 앞장선 전라좌수영의 지휘본부로 사용됐던 곳이다. 75칸의 대규모 객사로 단층 목조건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 진남관이라는 이름은 남쪽의 왜구를 진압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몸바쳐 싸웠을 옛 조상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글·사진 황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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