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북한 땅에서 스치거나 만나는 사람들이 그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남한 관광객이나 일시적 방문객을 맞는 사람들은 ‘사상무장 된 사람들’이다. 대부분 노동당원이라고 보면 된다는 게 통일부 관계자의 말이다. 북한 땅의 평범한 주민들을 아주 못 보는 것은 아니다. 몇 십m 내지는 몇 백m 떨어진 곳에서 서로 바라볼 수만 있을 뿐이다.

북한 당국은 현격한 경제력 격차에 의해 남쪽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사상적으로 무장된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믿을 수 없는 일반주민들은 접촉할 수 없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사상무장 된 사람들이라고 해서 남쪽의 영향을 아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없기 때문에 남쪽의 관광객과 방문객을 맞기 전, 남한 사회 실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철저한 사상무장을 하는 것은 필수다. 남한 사회는 사실 북한 사회보다 잘 살고 물질적으로 풍부하며, 회사와 가정마다 컴퓨터가 있고 ‘인터넷이라는 것’을 매일 한다는 것을. 남쪽의 젊은 여성들은 예뻐 보이기 위해 쌍꺼풀 수술도 하고 다이어트(살빼기)에 열심이며 외국여행을 해본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이들이 이 같은 사전 강의를 받고 나온다는 것을 실제 접촉해 대화해보면 알게 된다.

남쪽사람과 주민 철저히 분리

철저하게 사상무장 돼 있더라도 자기들이 못 가진 것으로 치장하고, 북한 땅에 없는 물건을 갖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자기들이 받는 월급의 전액에 해당되거나 그 이상 되는 달러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남쪽 사람들을 보며 언제까지 ‘미제(美帝)의 남조선괴뢰 치하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동포들’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게다. 그래서 아침저녁 집단적으로 ‘사상총화’를 반복하고 매주 한 번 이상 자아비판을 요구받는다고 한다.

이렇듯 사상무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지만,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크렘린궁전 사이에 레닌 동상은 없어도 칼 마르크스 동상은 남아있더라”는 말을 하면 금세 할 말을 잊고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나왔지만 평양구경조차 거의 해본 적이 없을 그들에게 사회주의의 고향이랄 수 있는 모스크바가 어떻게 생긴 도시인지를 보고 온 남쪽 사람들을 입씨름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정상선언문에서 개인적인 관심이 가는 것은 해주 경제특구 개발이다. 군사적 정치적 측면에서 봤을 때 북한 군부가 해주 항을 포함한 이 일대를 경제특구로 개발하는데 선뜻 동의한 것은 조금 의아해 보인다. 해주 항은 서해 북한 해군력의 핵심적인 군항인데다 해주 주변지역은 우리의 서해 5도와 수도권 서쪽 지역을 침공하기 위한 군사력이 대거 포진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을 별다른 주저 없이 개방하는데 북한 군부가 동의한 것은 공동어로수역, 평화수역에 자기들의 배가 지금보다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고 NLL을 무력화시키거나 훨씬 약화시킬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은 아닐까. 다만 남쪽 인사들이 자신들의 서해 최전선인 해주 일대를 드나들게 되면 주민들의 사상이 ‘퇴폐적 자본주의에 의해 오염’되는 게 걱정되긴 하지만,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처럼 일반주민들을 남한 인사들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

초코파이·고깃국이 ‘햇볕’ 선도

하지만 그들도 알 것이다. 남쪽에서 수송돼온 초코파이와 라면, 노동자들에게 급식으로 나오는 고깃국, 남쪽 인사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뽀얀 살결이 주민들과 당원들을 심리적으로 서서히 이탈시킬 것이라는 점을. 가난한 주체사상은 이른바 ‘돈맛’에 취약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해주 일대와 해주 앞바다를 여는데 합의한 것은 주체사상만 갖고는 더 이상 자력갱생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저나 한 가지 배 아픈 건 해주 일대 개방이 가져오는 결실의 대부분을 인천과 경기도가 가져갈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교류에도 지리적 이점이 작용한다는 게 충청권에 있는 우리로선 상당히 아쉽기만 하다. 묘안은 없는지 연구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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