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난감하게 됐다. 할 말이 없다. 유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노 대통령은 엊그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연루의혹’과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의 ‘건설업자 비호의혹’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변 전 실장 관련의혹을 두고 “깜도 안 된다. 소설 같다”며 언론보도를 비난하던 얼마 전과는 딴판이다. “나는 30년 공무원생활을 바르게 한 사람”이라며 법적 대응 운운하던 변씨도 더 이상 못 버티고 사표를 냈다.

정권 말 계속 터지는 측근비리

변씨의 ‘신정아씨 비호의혹’ 실체가 일부 드러났기 때문이다. 변씨의 해명과 노 대통령의 말, 그리고 청와대 발표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국정원장의 과잉노출, 환경부장관의 대선캠프행, 취재제한조치 등 최근의 제반 이슈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잘못을 인정치 않던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분통 터질 노릇이다. 노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이 지경에 되도록 참모들은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언론보도를 적대시하고 자기 식구는 무조건 감싸온 노 대통령이 아니던가. 때문에 그들을 끝까지 지켜온(?) 대통령의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청와대’라며 자랑해오던 검증시스템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장관실에서, 청와대 내에서 100통이 넘는 불륜 편지를 쓰며 신정아씨를 비호해 왔는데도 누구 하나 제동을 걸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러고도 청와대의 검증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권의 도덕성’을 강조해왔다. 집권 초의 최도술 부속실장 개인비리 외에 크게 드러난 비리가 없다고 자부해 왔다. 온갖 비판 속에서도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큰 흠집이 없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임기 말 들어 하나 둘씩 비리가 불거져 나오더니 정윤재 사건과 변 전 실장의 ‘신정아 사건 개입행각’이 드러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혔다. 정권이 마지막으로 내세웠던 도덕성마저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밖에도 요즘 권력의 누수현상은 심각할 정도다. 세계 13위의 경제대국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재정수지를 17조 원이나 잘못 계산하는가 하면, 교육부공무원이 2억여 원의 뇌물을 받고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 여름 공기업 및 공공기관 감사 집단외유사건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또 서울의 모 구청장은 아파트건설업체 인허가 편의를 봐 준 혐의로 수사 받고 있다. 이밖에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각종 비리와 탈법 불법행위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변 전 실장과 정 전 비서관이 관련된 사건은 검찰수사에 맡겨 진실을 밝힐 일이다. 시중에는 ‘신정아 사건’의 경우 변 전 실장은 깃털이고 몸통은 더 윗선의 실세라는 등 별별 유비통신이 다 떠돌고 있다. 검찰도 배후의 더 큰 몸통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자칫 특검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빈틈없이 수사해야 할 것이다.

철저한 수사로 몸통 밝혀야

노 정권도 레임덕이 본격 시작됐다. 임기 말의 레임덕현상(lame duck·절름발이오리처럼 임기 말 일관성을 잃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있는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말이면 어김없이 레임덕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민주화 이후만 해도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아들들의 비리로 인해 레임덕이 더욱 심했다. 정권 말 1년은 제대로 대통령집무를 못할 정도였다. 이제 참여정부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레임덕은 권력형 부패나 측근비리를 동반하므로 이를 철저히 경계할 일이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청렴성과 투명성의 정권브랜드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측근관리와 공직기강확립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부 대선주자들을 비난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 해선 안 된다. 또 현재 벌이고 있는 언론과의 전쟁은 즉각 중단해야 옳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국정에만 진력(盡力)해야 한다.(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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