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최나경씨의 플루트 독주회. 저녁 6시 한 차로 상경하는 후배부부와 KTX 박스석에 마주앉아 음료와 스낵으로 반요기를 하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아트 홀에서 느낀 첫 감동은, 한국 아니 세계적인 메세나운동의 선각자 고 박성용 회장과의 만남이었다. 그분의 흉상(胸像)에는 지적이면서도 인자한, 먼 앞날을 내다보는 눈빛이 대가의 예술품답게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지난 5월에 2주기를 맞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두 번째 감동은 홀 자체였다. 온통 목재로 마감한 콘서트 전용의 300석 남짓한 홀. 무대와 홀 바닥은 최고급 단풍나무고, 벽면 마감은 체리목이라고 한다. 연주가 시작되자 피아노와 플루트의 음향에 빨려 들면서, 마치 최고의 장인이 만든 거대한 악기 속에 들어와 앉아 있는 착각에 빠졌다. 박수소리마저 음악처럼 객석에 피드백 되는데, 하물며 연주자는 어떠할까? 전용 콘서트홀, 그리고 훌륭한 설계(NHK Eng.)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이 두 가지의 감동만으로 왕복 열차여행의 부담감을 깨끗이 씻었다.

신시내티 심포니의 플루트 부수석인 재스민 초이, 최나경씨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날 공연에서 다시 느낀 것은, 연주는 관현악단의 일원으로서 또는 악단과의 협연도 중요하지만, 개인콘서트는 꼭 들어야 할 Must Course라는 점이었다. 1부의 마지막 곡 쇤필드의 네 개의 수버니어는 재즈나 스윙처럼 경쾌하고 다양한 연주였다. 제2부의 첫 곡 베리오의 세쿠엔자는 소절에 구애받지 않고 연주자의 해석과 개성을 최대로 살리라는 작곡자의 주문으로, 재스민에게는 맞춤 곡이었다. 귀를 찢는 듯 날카로운 고음의 카코포니에서 목젖의 울림 같은 튜바의 저음까지 다양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청아한 대금이 있고 서글픈 안데스의 팬플루트가 있는가 하면, 여운 깊은 호른이나 모범생 클라리넷의 음색도 튀어나온다.

쇤필드와 베리오의 두 곡에 대하여 한마디 덧붙인다. 피아노는 리스트에 의해, 바이올린은 파가니니에 의해서 집대성되었지만, 플루트는 아직도 개량과 진화가 진행 중이라고 최나경씨는 말한다. 이제 최씨는 뛰어난 테크닉과 노력을 바탕으로, 단순히 비르투오소의 목표를 넘어, 플루트 자체의 한계와 새로운 진화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점은 이날의 앵커 곡(전문용어가 아니라 콘서트의 마지막 연주곡에 필자가 붙인 이름)인 카르멘 환상곡에서 재확인된다. 특히 하바네라의 다섯 번 변주에서, 필자는 다섯 종류의 악기소리를 들었다. 다양한 음색과 실험적인 연주기법으로 뛰어난 기량을 마음껏 펼친 연주회였다. 힘차고 강렬한 피날레는 객석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였지만, 포레의 로망스를 비롯하여 앙코르 두 곡을 겨우 듣고 열차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나온 것이 아쉽다.

KTX 때문에 희비가 엇갈려,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서울로 몰린다고 걱정하지만, 반대로 서울 부산 대구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다. 문화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팬들을 끌어들이려면 뛰어난 예술인들의 육성 그리고 좋은 프로그램의 개발과 홍보가 전제요 필수조건이다. 전문가들이 5년, 10년 씩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이나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임철중<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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