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사고등급의 대상이 된단 말입니까." 지난 1월11일 오후 대전 유성구 소재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열린 제56차 원자력 사고·고장등급위원회에서는 한때 고성이 오갔다. 하나로 원자로의 방사능 유출과 관련돼 사고등급을 결정하려던 등급평가위원들과 한국원자력연구소(현재는 원자력연구원)관계자 간에 설전이 벌어진 것이다.

페널티 받았던 원자력연구원

원자력연구소관계자들은 하나로 원자로의 사고가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심의할 대상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하나로 원자로가 상업용이 아닌 연구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등급평가위원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규정에 의거 당연히 하나로 원자로도 고장등급의 대상이 된다고 맞섰다. 연구용 원자로라 해도 규모면에서 상업용을 앞지르는 외국의 사례가 있으며, 아무리 작은 연구용원자로라 해도 예외없이 안전규제를 받고 있다는 발언들이 뒤를 이었다. 등평위원들은 논의 끝에 2006년 10월 23일 발생한 하나로 사건(하나로 조사재시험시설의 공기조화계통 필터뱅크 누설성능시험중 화재발생사건)에 대해 1등급 판정을 내렸다. 방사선 영향이 미미해 0등급(안전과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 평가하지만 안전관리 등 포괄적인 안전문화가 결여돼 한 등급을 상향조정한 것이다(1등급부터 7등급까지는 안전과 관련이 있는 사건으로 분류.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가장 높은 7등급). 사안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안전 의식이 `부족`해서 내린 일종의 페널티다.

그로부터 7개월 후. 원자력연구원에서는 또 한번 안전문화 부재를 드러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보관중이던 우라늄이 분실된 것이다. 실험실에 놓아둔 천연우라늄, 감손우라늄,10% 농축우라늄이 일반폐기물로 오인돼 반출됐다는 것이다. 곧이어 우라늄이 없어진 지 3개월이지나도록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사족처럼 더해졌다. `안전없이는 연구도 없다`는 원자력연구원의 경영지침을 무색케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심각성을 더한 것은 10%농축우라늄 0.2g이다. 없어진 농축우라늄은 말 그대로 보통 우라늄이 아니다. 2000년 극소량의 우라늄 분리실험을 해 얻은 농축우라늄으로 국내외로부터 `핵무기개발의혹`을 받았던 바로 그 우라늄이다. 이로인해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연구원에 대한 특별사찰을 실시한바 있다. IAEA의 사찰핵물질이 사라진 것을, 그것도 제때에 인식조차 못했다는 것은 총체적 안전문화 결여라는 말로밖에 설명될 수 없다. `폐액 보관용기 외부에는 식별표지 스티커를 부착해야 한다`는 명시된 안전지침만 준수했더라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증언은 곱씹어 볼 대목이다.

지침 준수 안전의식 강화 시급

"없어진 물질은 연구용으로나 사용이 가능한 적은 양이고, 우라늄에서 나오는 방사능은 공기 중에 존재하는 방사능 수치보다도 낮아 인체나 환경에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다"는 해명만으로는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핵물질들이 안전하게 제대로 관리·감시되고 있구나"라는 인식이 형성될 때까지 특단의 안전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차제에 원자력연구원 조직의 난맥상, 불명확한 직무구분,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인적 필터, 의사결정 조직 등에 대한 진단도 병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한국 원자력통제기술원의 역할과 업무, 유관 기관과의 공조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역시 필요하다. 이번 사건으로 핵물질 관리에 대한 대외신뢰도가 떨어진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핵사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원자력 관련 연구에 악영향을 줄 개연성이 크다.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건 사고의 기저에는 "이정도 쯤이야",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잖아"라는 안일한 인식과 행동이 예외없이 자리한다. 최선의 예방법은 지침 준수와 안전의식 강화다. 기본에 충실해 줄 것을 관련자 모두에게 촉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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