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는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문화를 협의로 해석한다면 ‘문화적(文化的)인 것’ 역시 마찬가지다. 동서고금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어보면 모두 하나같이 이 원칙을 따른다. 이를테면 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때까지 식기라고는 주석이나 은으로 만든 것밖에 없던 유럽인들에게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임진왜란 때 끌려간 우리나라 도공들이 만들어낸 것이다)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들었다는데 어떻게 아름다운 빛깔과 문양을 새길 수 있었을까 라고.

물론 유럽인들이 비싼 값을 치르고 동양의 도자기를 수입해 쓰지만은 않았다. 이후 그들도 도자기 굽는 기술을 터득했고, 동양의 기술을 응용하고 유럽 고유의 문화적 요소를 접목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적 명성을 가진 유럽 도자기들이 탄생한다.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영국에서 탄생한 ‘본차이나’이다. 고대 중국의 종이기술자들이 이슬람군대의 포로가 되는 바람에 종이 만드는 기술이 세계로 퍼졌듯이 사람의 이동도 문화의 흐름, 발전에 당연히 기여를 한다.

스타영입 ‘명문 시티즌’ 기대 커

이는 거대 문화권 사이에서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 국내의 지방 사이에서, 이질적인 직종 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중앙정부가 민간의 전문가들을 중간간부로 채용하는 것도 이 같은 범주의 일로 볼 수 있겠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일이 잦은 스포츠나 예술 분야에서는 이런 영입의 효과가 두드러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시민구단인 대전시티즌을 보자.

대전시티즌에 고종수 선수와 김호 감독이 차례로 영입됐다. 두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진 인물인지 여기서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고종수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그가 한창 성가를 날리던 때의 플레이를 재현할 수 있는가 여부다. 그렇게 된다면 대전시티즌은 패배나 무승부를 밥 먹듯 하는 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축구팬들은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부산아이파크와의 FA컵 16강전에서 후반전을 35분간 뛴 그의 플레이는 이런 기대를 부풀 게 하기에 충분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수원삼성으로 이적시킨 이관우가 했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도 남으리라는 기대를 갖는 것 같다. 여기에 ‘영원한 야인’ 김호 감독이 가세했으니 기대감은 더 커지게 됐다. 설명이 필요 없는 두 명의 영입으로 대전시티즌은 다른 프로축구단들처럼 스타마케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두 명의 스타가 지연, 학연, 과거 소속팀 그 어느 것 하나, 대전이나 충청권에 아무런 연고가 없어도 팬들에게는 하등의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대전시티즌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을 이름값을 하게 만든 조석준 관장이 1년 더 연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퇴키로 했다는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전적으로 자의는 아닌 것 같다.

소통 막으면 문화성숙 길 막혀

공과(功過)가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아무래도 과보다는 공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가 남긴 공과를 계량화한 결과가 있어서 객관적인 평가를 시도할 수 있다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가 이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측의 이유 중에 “서울 출신이어서”, “지역공연계를 홀대해서”라는 말이 들린다. 서울 출신인 것이 문제라면 애초 임용 때 문제 삼았어야 했다. 지역공연계 홀대 주장에는 아무래도 전당 이름값에 무임승차하려는 혐의가 읽혀지는데, 그걸 막았다는 괘씸죄가 걸린 것처럼 보인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전당 이름값에 어울리는 능력을 가진 분들이라면 조 관장은 시쳇말로 잘려도 싸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많은, 다수가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능력 있는 인물의 외부영입에 의해 지역문화가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길 하나가 막히게 됐다는 느낌이다. 자유로운 문화적 소통, 흐름을 막으면 고인 물처럼 악취를 풍기며 썩게 되는 법이다. 임용권을 가진 대전시가 후임자를 고르는 데 있어 높은 안목을 가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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