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뉴밀레니엄을 맞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는 ‘여성성’(女性性)이 지배하는 세기가 되기를 희구했다. 20세기는 ‘남성성’(男性性)이 지배하였기 때문에 두 차례의 대전(大戰)과 한국전 베트남전 등 국지전을 포함, 민족과 국가간 많은 학살과 전쟁이 있었고 증오와 갈등이 만연했다는 반성에서 나온 새로운 바람이었다.

그들이 주장한 ‘여성성’은 ‘남성성’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미움과 싸움과 증오보다는 사랑과 이해와 포용이 충만한 부드러운 인간애가 존재하는 평화로운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같은 기대는 특히 2000년대 들어 지구촌 각국에서 많은 여성 정치지도자들이 부상하게 된 결과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상징적 존재이긴 하지만 인도에 여성대통령이 등장한 것까지 포함하여 모두 9명이 대통령 혹은 총리로 새로 진출하여 현재 세계에는 모두 11명의 여성 정치지도자가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가 여성 정치지도자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그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주정치 실험 60년에 처음 여성 대통령 후보를 접하면서 선거운동 과정은 물론 그 이후에도 과거 남성 대통령 후보들의 행태와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다. 제대로 ‘여성성’이 발휘된다면 탈진상태에 놓인 우리의 정치문화에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최근 한나라당의 경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보면서 그같은 기대가 점차 허물어들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물론 아직 정식으로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제1야당인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여론조사 등을 볼 때 이명박 후보와 두 후보가 벌이는 당내 경선은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경선 양상을 보면 과거 ‘남성성’이 지배할 때와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다는 생각이다. 상대방을 헐뜯고 각종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나, 두 후보가 엉켜 이전투구하는 모습은 ‘여성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박탈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딸’로서 ‘퍼스트 레이디’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보다 포용력과 아량으로 상생의 정도를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즉, 비전으로 승부를 거는 모습을 보인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큰 지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더욱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대통령의 딸’이라는 수식어는 득도 실도 될 수 있는 양면성이 있지 않은가.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 자와할랄 네루 전 총리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가 1966년 샤스트리 총리의 급서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당시 6억 인도인의 마음을 움직여 당당히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17년 동안 달고 다니던 ‘총리의 딸’도 ‘퍼스트 레이디’라는 수식어도 아니었다. 오직 “가리비 하타오(빈곤 추방)!”라는 한 마디의 구호이자 정책 때문이었다. 6억의 인도인들이 선거기간 내내 한 목소리로 “가리비 하타오!”를 외쳤고 결국 사상 최고의 압도적인 지지로 그녀를 총리로 선출했던 것이다.

상대방 후보의 약점을 들추어 자격 운운하는 것과 같은 유치한 방식으로는 국민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기대를 채울 수가 없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했던 부친의 절규를 능가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인류가 희구하는 ‘여성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숙고하여, 우리나라에도 평화와 배려와 온정이 그득한 상생의 정치문화를 이룩하는 데 일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승리로 이끌어주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라윤도<건양대 공연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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