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둔 요즘 교육부와 대학 간에 벌이고 있는 내신갈등은 수험생과 학부모를 골병들게 한다. 주요사립대들이 정시모집에서 내신 1-4등급을 만점처리 하겠다고 하자, 교육부는 즉각 “대입원칙을 깨는 대학에 대해 재정 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 서울대가 지난 4월에 이어 내신 1-2등급에 대해 만점처리방안을 재확인하자, 그동안 아무 말 없던 교육부는 내년도 교수배정불이익을 주겠다고 발끈하고 나섰다.

정부●대학 갈등 수험생만 골탕

서울대는 “지난 4월 발표 때 가만있던 교육부가 입시설명회가 끝 난지 2개월이 넘은 지금 문제 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강행할 태세다. 사립대 역시 교육부의 강경방침에 잠시 움찔했을 뿐 몇몇 사립대는 강행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정부는 7월 중순까지 입시안을 마련토록 대학에 요구했다. 그러나 주요대학 입학처장들은 9-10월에나 구체적 입시안마련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당연히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입시가 눈앞인데도 전형방식이 오락가락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도대체 어떻게 입시를 준비하라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짓고 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을 빨리 확정토록 정부와 대학 측에 호소했다. 왜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났는가. 정부가 고교 학력차를 인정하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소위 ‘3불 정책’의 하나인 고교등급제를 막겠다는 정부의 강경방침으로 빚어졌다고 말 할 수 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소재 고교가 고르게 일류대에 갈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속뜻이다. 쉽게 말해 정부는 학력이 떨어지는 시골학교 학생들도 서울대와 연●고대를 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고교평준화에 이어 대학도 평준화시키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내신 성적은 상대평가를 하므로 우수학생이 많은 특수목적고, 자립형사립고와 대도시고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현행 내신제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학들이 우수 학생을 뽑으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정부주도의 대입전형으로 우수인재를 뽑긴 어렵다. 정부가 변별력이 떨어지는 내신비중을 높이라고 강요하고 있어서다. 지역 간, 학교 간 실력 차를 인정치 않는 현행입시제도는 문제가 많다. 대학들이 규제를 피해 우수한 학생들을 뽑으려다 보니 정부와 대학 간 불협화음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대학입시는 대학에 맡겨야 옳다. 정부가 대입을 좌지우지해선 안 된다.

지난 1963년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지금까지 44년 간 입시제도는 11번이나 바뀌었다. 4년에 한번 꼴이다. 그동안 정부가 실험해보지 않은 제도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 입시 제도를 포퓰리즘적 잣대로 뜯어 고쳤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게 고교평준화제도다. 30여년이 넘는 고교평준화는 이제 완전 폐지는 어렵고 자립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의 대거설립 등으로 평준화의 폐해를 보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대선후보 교육백년대계 내놔야

얼마 전 이건희 삼성회장은 “기술 개발력을 높이고 인재를 천재수준으로 키워야하는데 교육제도가 획일적이어서 전반적으로 고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 현 고교평준화와 획일적인 대입제도를 꼬집었다. 최근 방한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박사도 “산업화시대의 공장식 교육 방식을 고집해선 안 되고 다변화된 교육제도와 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교평준화에 이어 대학까지 평준화하려는 이 정부가 새겨들어야할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올 대선 예비후보들, 특히 야당후보들은 “자신이 집권하면 획일적인 현행교육제도와 평준화정책을 손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잘못 된 것은 고쳐야 하지만 교육문제를 포퓰리즘적 시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구체적인 교육의 백년대계를 내 놓아야한다. 교육을 관료주의에서 풀어주고 학생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핵심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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