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텍서 조승희씨가 총기로 32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나타난 반응은 양국 국민들의 사고를 가늠케 한다. 미국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지만 대체적으로 범인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계 미국 이민자와 유학생들은 물론 국내의 한국인들은 애도를 표하면서도 혹시 한국인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美, 집단보다 개인책임 중시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사고가 여전하다. 자식이 성공하면 대부분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부각된다. 반대로 자식이 사회의 지탄을 받으면 부모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은 사회, 국가로 확대되기도 한다. 버지니아텍 사건도 그렇다. 사건직후 미국과 한국에서는 한국의 유력인사들이 ‘국가적’ 차원의 사과를 하기도 했다. 마치 범인이 조승희 ‘개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국민’인 것처럼.

미국은 당초 한국인의 우려와는 달랐다. 버지니아텍 사건은 한국과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범인 개인의 문제라는 못을 박았다.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의 사고와 행동의 확인이 가능하다. 뉴스위크지의 여론조사에서 90%가 “(이번 사건과) 한국은 아무 관련이 없고 책임도 없다”고 응답했다. “한국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응답한 7.2%가 마음에 걸리기는 한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100% 같은 대답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압도적인 비율로 국민보다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점이 한국인이 느끼는 집단죄의식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일부는 미국의 반응을 미국인들의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연결시킨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성숙’이란 단어는 반대개념도 수반한다. 형식논리상 미국과 다른 경우 성숙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반면 다른 이들은 개인적인 사건의 원인을 집단 또는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본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미국은 원래 그런 국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버지니아텍 사건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반응을 ‘성숙’과 ‘미성숙’의 개념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문화와 사고의 ‘차이’로 보는 태도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정치학회와 미국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한 세이무어 립셋의 저서 ‘미국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는 미국인의 사고를 어렴풋하게나마 엿보게 한다. 립셋은 이 책에서 미국이 다른 국가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특정분야에서 미국인의 사고와 행동은 다른 국가와 어떤 차이를 보이며 원인은 무엇인가’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미국인에게는 자기고백서며 비(非)미국인에게는 미국안내서쯤 된다고 하겠다.

한국 집단적 죄의식은 곤란

립셋은 이 책에서 미국인은 미국주의(Americanism)라는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이들이 월등히 많다는 주장을 편다. 미국주의의 요체는 자유·평등·개인·자유방임주의와 포퓰리즘으로 요약된다. 이런 토대에서 자라난 미국의 성인은 대부분 실패와 성공이 자기 하기에 달렸다고 주장한다.이를 바탕으로 따져보면 버지니아텍 사건의 원인이 한국으로 비화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 ‘미국주의’다. 만약 사건의 원인을 한국과 연관지었다면 미국인들은 자기모순에 빠진 꼴이 됐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수십명이 비명횡사했는데 “미국은 원래 그렇다”고 무잘라내듯 야멸찰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한국적 사고다.

다만 립셋은 ‘양날의 칼’처럼 미국에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엄연히 공존한다고 봤다. 버지니아텍 사건 이후 미국의 총기구입규제에 허술한 면이 많다는 점을 세계언론이 지적했다. 미국이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계기로 총기구입규제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립셋의 말처럼 미국은 부정적인 측면을 개선할 의지가 없거나 개선이 불가능한 취약한 구조를 지녔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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