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대학입시정책을 둘러싸고 각계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당국은 3불 정책(본고사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을 고수하고자 하고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학은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3불 정책이 각각 별개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것인 양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여입학제의 경우 수도권 일부 명문 사립대학에서의 주장이며 국·공립 대학과는 큰 관련이 없는 제도인 것이다.

처음 기여입학제가 거론되기 시작할 때는 ‘기부입학제’라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사립대학들이 입학을 조건으로 거액을 기부 받고 이 기부금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 기타 교육환경개선에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돈으로 대학입학증을 산다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명칭 자체를 점잖게 ‘기여입학제’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경련에서도 OECD의 권고라며 기여입학제의 도입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런데 실상 선진 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여입학제는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재력 있는 분이 특정 대학에 기부금을 내고, 나중에 그분의 자녀 혹은 가족이 해당 대학에 입학할 즈음, 대학에서는 이들의 기여정도를 고려하여 입학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대학에 대한 기부는 순수한 의도를 가진 선행(善行)이지 입학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기부금을 내고 5-10년 혹은 그 이후를 기다리려는 것이 아니다. 당장의 입학허가를 조건으로 대학에 기부금을 내는 이른바 ‘현금 박치기’ 바로 그것이다. 이야말로 돈으로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 서울의 모 대학에서는 금전적 기여 이외에 대학발전에 기여한 동창회 임원과 그 자녀들에 대한 입학특전도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또한 기여의 의미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 것으로서 또 다른 형태의 입시부정이란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핵심인재 양성과 유치를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 교육은 한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핵심인재 양성을 위한 인프라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평한 교육의 기회도 모든 국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이때 능력에 따른 차등은 인정되나 경제력 차이에 의한 차별은 허용될 수 없다. 기여입학제의 시행은 수도권 몇몇 대학에만 특혜로 작용할 것이며 대학 간의 엄청난 불균형은 또 다른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사립대학들은 더 이상 기여입학제의 허상을 좇을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현재도 대학에 대한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는 허용되지 않는가? 이제는 대학도 스스로 효율적 재정운영에 힘써야 한다. 대학 스스로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양성을 위해 교육의 내용 및 방법의 혁신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특히 대기업)도 우수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에의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기업의 성장에 대학이 양성한 인재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정부 역시 기여입학제 금지 원칙만 반복적으로 읊어서는 안 된다. 네거티브 정책을 고등교육의 기본으로 삼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의 사회발전에 밑거름이 될 고등교육의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학에도 국·공립과 비슷한 수준의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비록 사립대학에서 이루어지나 그것 역시 공교육이기 때문이다.

<기영석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