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50돌을 맞았다. 거의 지구 반 바퀴 너머에 있는 EU 50주년 기념식사진이 주요외신으로 보도되는 배경에는 오늘날 EU에 대해 느끼는 경이로움은 물론이고 부러움까지 녹아 있다. ‘국가단위에서의 최대실험’, ‘국경개방’, ‘시장통합’ 등의 여러 수식어를 동원해야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한 EU 50주년은, 교역량이 세계 최대수준이면서도 군비증강으로 역내 안보불안이 점증하는 동북아시아에서 EU같은 공동체는 불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되뇌게 한다.

사실 유럽인들의 생활을 지켜보면 ‘산업·자본·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워 국경이 없어졌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국경을 넘는 장거리 국제열차를 탈 때 그들은 여권이 필요 없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 같은 조그만 신분증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반드시 여권을 휴대해야 하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하긴 국경을 넘어 매일 출퇴근하는 곳이 EU에서 한두 군데도 아니고 국경 너머에 있는 다른 나라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곳도 있다. 스페인인이 직장을 얻어 별 어려움 없이 네덜란드, 덴마크로 옮겨가고 폴란드인이 같은 이유로 런던, 파리로 이주한다. 마치 충북 옥천에서 대전으로 출퇴근하고 대전에서 천안으로 직장을 옮기는 개념과 같은 일이 나라 사이에서 흔한 곳이 EU이다.

국경 무의미… 域內이주 활발

각기 고유의 역사와 언어,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EU 아래로 모이면서 국민들의 삶에 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등 근본적인 변화를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들은 EU의 모태가 된 로마조약뿐만 아니라 그 뒤 이를 수정·보완하는 수많은 조약에 따라 이뤄진 것들이다. EU 회원국들은 경제주권의 70~80%는 EU에 넘겨준 반면 외교·국방·교육 등의 분야는 자유롭게, 또는 회원국 간 대등한 협상을 거쳐 행사한다고 한다.

이런 일이 동북아시아에서는 불가능한 일일까. 역사와 문화가 근본적으로 다른 동북아시아와 EU 두 지역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EU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수많은 기본전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공동체 지도력을 행사할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이 공동체에 대한 미국의 지지여부가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현실적으로 중국과 일본이 독일과 프랑스처럼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두 나라는 정치적·군사적 측면에서 상대방을 잠재적인 적(敵)으로 간주하고 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과 달리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 진솔한 참회를 회피함으로써 동북아공동체 구성을 위한 의제제기조차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일본의 진지한 참회 결여는 한반도와 중국에서 민족주의 극복을 돕기는커녕 더욱 확산시키는 바이러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동남아 화교경제권이 형성돼 있고 나라 자체가 거대국가인 중국이 동북아공동체 필요성을 느낄지도 의문이다. 동북아 3국의 경제구조에 상호보완적 요소보다 경쟁적 요소가 많은 것도 걸림돌이다. 미국이 자기이해 때문에 50년 전 서유럽에 적용한 다자주의 외교와 달리 동북아국가들에게 양자외교 유지를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장애물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협조와 견제, 봉쇄를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동북아 외교 틀이 바뀌지 않는 한 동북아공동체는 논의조차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베네룩스 같은 지혜 발휘해야

지금 이대로 별 문제가 없는데 동북아공동체가 필요한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뒤, 20년 뒤에도 동북아시아가 현재의 구조로 유지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부시 미국대통령은 ‘내년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언급했다. 이는 남·북한 간 전쟁위험성 감소를 의미하겠지만 동시에 동북아 국제정세가 새로운 틀로 옮겨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북아 국제정세 불안에서 벗어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계속하려면 우리는 생존전략의 하나로, EU를 유지할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제공했던 베네룩스 3국처럼 동북아의 베네룩스가 되는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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