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정(鄭) 나라에 한 사내가 살았다. 하루는 밭일을 하고 있는데 부인이 시장에 간다고 나섰다. 그는 부인에게 자기 신발을 하나 사오라고 일렀다. 그러나 그날 저녁 부인이 사온 신발은 너무 커서 신을 수가 없었다.

며칠 후 부인이 다시 시장에 갈 때 좀 작은 것으로 바꿔오라고 했다. 그런데 부인이 다시 바꿔온 신발이 이번에는 너무 작아서 신을 수가 없었다. 사내는 다시 신발을 바꿔오라고 했다. 며칠 후 시장에 갔다 온 부인은 “꼭 맞는 신발을 신으려면 남편 발의 정확한 치수를 재어오라”는 신발가게 주인의 말을 남편에게 전했다.

사내는 이웃집 훈장에게 가서 자기 발의 정확한 치수를 재어달라고 부탁하고 그 치수를 종이에 적어두었다. 이번에는 이 치수를 잰 종이를 가지고 자기가 직접 장에 가서 신발을 사올 작정이었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 아침 그는 서둘러 장에 갔다. 그런데 정작 집을 나설 때는 치수를 적어놓은 종이를 깜빡 잊고 나왔다. 신발가게에서 신발을 고를 때야 비로소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내는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거 큰 일 났네. 치수를 적은 종이를 놓고 나왔네”

사내는 급히 집으로 달려가서 치수를 적은 종이를 가지고 다시 장터로 향했다. 그러나 장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라 장터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맥이 빠져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그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자네 어딜 갔다 오나” “장에 신발 사러 갔다 오는 길이야” “신발을 사지 못했나 보군. 많이 비싸던가”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실수를 했어. 글쎄 바보처럼 치수를 적어놓은 종이를 집에 두고 갔지 뭐겠나” “누구 신발인데, 자네 마누라 거야, 아이들 거야?” “아니 내 거야.”

친구는 사내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이런 친구 봤나. 자기 신발을 사러 가는데 치수는 무슨 얼어죽을 치수야. 그냥 발에 맞춰 사면되지” 그러나 사내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친구가 딱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소리 말게. 그 치수는 훈장이 재어 준 치수인데 아무렴 그 치수가 더 정확하지 않겠나.”

우리가 이론과 기준을 세우고 법과 규정을 만들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단지 편리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세워놓은 기준과 규정에 얽매이어 그것이 절대적인 것인 양 사실과 실제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최근 이건희 회장의 샌드위치론이 화제다. 중국이 쫒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라는 것이다. 중국이 무섭게 발전하고 있어 제조원가는 중국에 밀리고 품질은 일본에게 밀린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야심차게 벌여온 동북아 허브 계획만 해도 그렇다. 인천은 고사하고 부산과 광양을 모두 합친 경제자유구역이 지난 해 유치한 외자가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의 1/20도 안 되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자유구역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이유 중의 하나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 때문이라고 한다.

무슨 규제가 그리도 심한지 이곳에서 외국기업이 사업승인을 위해 17개의 인허가 절차를 밟는데 9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규제에 묶여 현재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요를 위해 만든 규정에 목을 매고 있는 관료들의 경직된 사고,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인가 보다.

남청<배재대 심리철학과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본문인용 등의 행위를 금합니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