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고향인 충남 서천군민들이 요즘 장항산업단지 조성문제를 둘러싸고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착잡한 감회를 지울 수 없습니다.

작년 말 나소열 서천군수가 서울경제신문사에서 지근거리인 종합청사 문밖에서 천막단식을 하고, 서천군민들이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 때 저는 서천군민들의 울분의 함성을 귓전으로 들었습니다.

장항산단은 18년 전에 결정된 국책사업임에도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해 온 터에 현 정부에서 사업내용을 축소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참다못해 군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저는 어렸을 적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에 걸친 일로 기억합니다. 당시 공화당 정부는 서천군 비인면과 서면 일대에 비인공단을 조성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적마다 정부고위관리들과 정치인들이 서천에 내려와 공단착공 발파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서면까지 내려와 발파스위치를 누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후 정부는 서천에서 비인까지 철로를 연결한다면서 철도부지를 수용하고 철둑까지 쌓기도 했습니다. 장항산단을 조성한다면서 역대 정부가 연결도로를 설치하고 어민보상을 한 것과 매우 닮은 꼴입니다.

철길은 종천면 종천리 고향집 앞으로 지나가게 돼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젠 나도 매일 열차를 구경할 수 있겠구나”하며 철길이 뚫리는 날을 고대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오리라던 열차는 끝내 오지 않았고, 비인공단 조성계획은 폐기됐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게 됐습니다. 울산공단과 입지경합을 벌이다가 졌다는 소식과 함께.

80년대 들어 서면에 공단이 아닌 화력발전소가 들어왔습니다. 화력발전소를 짓기 위해 천혜의 해수욕장인 동백정 해수욕장이 깔아뭉개졌습니다. 보령군 성주탄광에서 나오는 저질탄에 콜타르를 섞어서 태우는 발전소였습니다. 성주탄광은 그 뒤로 완전 폐광돼 지금은 수입석탄을 태워서 발전을 하는데 그나마 경제성이 떨어져 골칫덩이가 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서천화력으로 인해 사라진 동백정해수욕장은 백옥 같은 모래사장, 동백나무가 우거진 동백섬 그리고 섬 위에 정자가 한데 어우러진 서해안의 명물 해수욕장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울산공단 정도의 공단이라도 들어섰다면 덜 억울할 것입니다. 고작 경제성이 없는 화력발전소 하나를 짓기 위해 동백정해수욕장이 희생된 것을 생각할 때 저는 지금도 당시 정부의 몰지각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비인공단에 걸었던 서천군민의 기대는 그렇게 처참하게 망가졌습니다. 서천군민은 정부 그리고 정치인들에 의해 농락을 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지금 되풀이되려 하고 있으니 서천군민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항산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새만금간척사업을 예로 들고 있다고 합니다. 새만금은 개펄보존의 문제와 함께 수질오염의 문제로 인해 논란됐습니다. 하지만 장항 산단의 경우 수질오염문제는 아예 없고, 금강으로부터의 토사유입으로 인해 개펄의 높이가 날로 높아져 자연매립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금강의 하구라는 점에서 산업입지 조건도 양호합니다. 새만금 사업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서천이 환경적으로 쾌적한 지역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환경보전도 사람이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번듯한 공장 하나라도 유치해 항구적인 일자리와 소득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낙후로 인해 갈수록 인구가 줄고 있는 서천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염원입니다.

장항산단에 관한 서천군민들의 울분은 이 같은 지난 역사와 현실의 문제가 겹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서천군민의 마음을 충남 도민들은 물론 중앙정부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林鍾乾(서울경제신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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