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승리 4주년을 맞은 지난 19일 열린우리당은 인적 없는 집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기념식을 개최하지 않은 것은 물론 당사 어디를 둘러봐도 대선승리를 기억해 낼 수 있는 현수막이나 플래카드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당 차원의 기념식을 따로 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쓸쓸하다는 것이 당 관계자의 얘기였다고 한다. 말 그대로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한 지지율을 가지고 기념식이니 뭐니 할 맛이 날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정계개편의 회오리에 휩싸여 당의 해체론마저 나오는 판이니 오죽하겠는가.

단지 당내 친노그룹의 경우 참여정부의 장차관이나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지낸 인사들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경우가 고작이었다. 내년에 여권의 판도가 어떻게 변하고 대선후보가 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정권재창출이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와중에서 친노그룹 인사들은 한 건만 터뜨리면 지금의 난국을 일시에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한 건’중의 하나는 두말 할 것 없이 남북관계다.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유도해 내년 대선에서 표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도 이 점이 걱정스러운지 경계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한나라당에서 제기하는 의혹 수준이긴 하지만 남북정상회담과 적절히 엮어 군 징병제를 폐지하자는 이벤트로 대선의 판도를 뒤집는 기획을 한다는 내용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평화를 선언하고 남북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남북한 간에 엄청난 상비군의 유지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펴면서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어 젊은이들과 그 가족들을 열광시켜 대선 판도를 일거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대선 히든카드로서의 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있을 수 있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야당으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기는 하겠다.

문제는 이제 대통령 선거에서 터트리기식의 이벤트에 더 이상 북한 변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북한 이슈는 햇볕정책이래 10년 넘게 진행되면서 국민 간에 북한 문제에 대한 상당한 합의가 생겨 한건 터트리기로는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이벤트엔 국민들도 감동하지 않는다. 북한이 지금까지 한 것 중 가장 도발적이라는 지난 10월의 핵실험을 보고도 국민들의 반응은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핵실험보다 아파트값 상승이라는 폭탄이 더 엄청났다는 얘기가 나왔으니 그동안 우리국민들의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학습효과가 생겼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에서 국민 대다수는 경제활성화를 비롯한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지 다른 사안은 안중에도 없는 것으로 나왔다. 또 의견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상당수의 학자들도 내년대선에서 북한문제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드는데 예전과 같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니 이제 남북관계를 대선용 ‘한 건’으로는 약발이 다했으니 써먹지 말라는 얘기다. ‘햇볕장사’ 에 ‘안보’ 맞불이벤트라도 나오면 내년 한해는 나라가 온통 보혁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용자와 피고용자 등으로 갈려 `너 죽고 나 죽기` 식의 소모전까지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선거 국면을 평화세력과 대결세력의 구도로 만들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섰는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은 지난 정권들의 위기조장용 안보장사와 장밋빛 햇볕장사에 오히려 염증이 날 지경이다.

‘안보장사’건 ‘햇볕장사’건 남북관계는 5년마다 벌어지는 선거장터의 장사밑천이 아니다. 설사 장사밑천이라 해도 그것은 결국 북한에서 던져주는 선심이 아닌가.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걸린 최대의 문제를 깜짝이벤트로 결정해 북한의 입맛에 끝없이 끌려다니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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