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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작(細作)과 그 후원자들

2006-11-01기사 편집 2006-10-31 16: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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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은 첩보전의 승리이기도 했다. 을지문덕은 스스로 첩자로 분해 적지에 뛰어들기도 하고, 거짓으로 항복하여 수나라 장수의 마음을 떠보기도 했다. ‘역사를 훔친 첩자’(김영수 지음)는 첩보에 바탕을 둔 심리전과 기만술이 어느 수준이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고구려와 수의 전쟁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을지문덕은 일찍부터 수의 변경에 첩자를 심어 활용했고, 상대편 고위 관리들을 포섭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당대 최고의 첩보 전문가였던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이룩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속의 세작(細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스파이로 불리는 이 익명의 존재는 배후에서 국제 정세의 판도를 변화시키고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했다. 삼국시대나 중국의 전국시대에 세작들이 들끓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은 첩자의 온상이며, 첩자는 전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간첩 행위나 첩보 대상은 긴장과 갈등,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에 집중되고 그 대칭점에 있는 나라에서 필요성이 극대화된다. 세작은 이렇게 어수선한 시대에 나타나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뿌리내림을 역사가 증명한다.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간첩은 뿔달린 도끼비나 시뻘건 허수아비 같은 형상으로 다가오곤 했다. 동백림 사건등 왜곡의 역사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부를 불신하고, 간첩잡는 기관을 매도하기도 했다. 간첩이, 사실은 우리의 평범한 이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민주화가 되고 나서였다. 그뒤 공작금을 몽땅 털린 ‘간첩 리철진’ 따위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러니 간첩은 선량하고 순진하다?

서독판 햇볕정책인 동방정책(1970년)의 출발에서 1989년 동독 붕괴에 이르기까지 독일 현대사는 간첩과의 싸움이었다. 2만-3만명의 동독첩자가 공공연하게 활동하던 그 시절을 딛고 서독이 통일을 이룩한 것은 건강한 시민 의식 때문이었다. 유럽 최강의 방첩망으로도 간첩을 막지 못했지만 ‘스파이 바이러스’는 독일인들을 어쩌지 못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월남은 세계 4위의 군사력과 막강한 미군을 뒤에 두고도 끝내 공산화됐다. 배경에는 정치권과 시민 종교 단체, 언론등에 침투한 통일전선 공작의 선봉장인 세작과 그 후원자가 있었다.

지금 우리는 드라마같은 대규모 간첩단 의혹사건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고정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장모씨와 그가 조직한 ‘일심회’ 조직원, 그리고 일부 진보 정당원과 사회단체 인사들의 북한 공작원 접촉 의혹이 핵심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특정 정당 당선을 막는 방안’과 ‘환경문제를 부각시켜 시민단체를 반미투쟁에 끌어들이는 방안’ 공작등 드러나고 있는 사실들이 점입가경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후원자들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 일이 아닌 데도 무감각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안보 불감증과 정치 공세 속에서 믿고 지켜온 가치는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 혐의자가 달고 다닌 훈장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말문이 막힌다. 사상이나 이념은 그렇다해도 행위는 제재해야 할 텐데 믿어지지 않는 일은 계속된다. 간첩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던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사의를 표시한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첩자를 파견하는 생간(生間) 정도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적국 관리를 이용하는 내간(內間)의 차원으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이다.

북핵 실험 여파로 더없이 어수선한 이즈음 간첩 사건은 국가 정체성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난 대선에서 ‘승차권’ 잘못 끊은 탓으로 돌리고 언제까지 침묵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먹고 사는 일은 그런대로 견딜 수 있고, 교육 문제도 참지 못할 이유가 없다. 햇볕도 포용도 얼마든 용인할 수 있다. 그러나 체제와 안보는 후대들을 위해서라도 타협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우리를 태우고 달리는 운전기사에게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이 버스가 목적지로 가기는 가는 것이냐고.

宋信鏞<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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