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으며, 한글은 인류가 발명한 세계 최고의 문자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이 이야기는 이제까지 무엇이든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일등주의를 만족시키는 한 가지 메뉴로서 끊임없이 인용되어 왔다. 또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동기는 애민정신의 표상으로, 일제시대의 한글운동은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21세기 정보화시대에, 그리고 세계가 하나로 좁아지는 세계화시대에는 애민정신이나 애국심만으로는 더 이상 한글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이제는 한글을 정보교환의 효율성의 관점에서 그리고 정보획득의 민주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활용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에는 현재 600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세계 도서 생산량을 기준으로 한 세계 주요문자의 수는 12개 정도이다. 그중 최고는 로마알파벳으로 세계 출판물 중에서 70% 이상이 로마알파벳으로 출판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과 영어 세계화의 확산으로 약소국가의 수많은 언어가 사멸해 가고 있다. 세계는 지금 언어 전쟁 중이라는 이 순간에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인 동시에 언어 강국이 되었으며,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언어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어와 한글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그 힘을 키워가고 있는 이유는 우리의 국가 경쟁력이 성장한데다, 한글의 우수성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한민국 수립 이후 60년 만에 정치,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배우기 쉬운 한글로 대중교육이 가능했고, 지식과 정보의 공유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가장 앞서가는 ‘IT 강국’이 된 이유는 한글이 초를 다투는 전자정보 시대에 다른 어떤 문자보다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문자였기 때문이다. 12개로 제한된 핸드폰의 자판 내에서 천지인 3개의 자판으로 19개의 모음을 이렇게 빠르고 쉽게 입력할 수 있는 문자는 없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한글을 이용하여 인터넷과 핸드폰 문자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를 동시에 공유할 수 있는가를 목격했다. 그러나 전자정보화 시대의 진정한 성공은 빠른 속도나 거대한 양이 아니라, 정보매체와 한글을 통해 교환되는 정보의 질과 보존되는 콘텐츠의 질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 문화에 비하여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이유는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 문화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알파벳이 이집트문자보다 훨씬 배우기 쉬운 문자였고, 그리스인들의 지식이 알파벳을 통하여 다음 세대로 쉽게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인류의 모든 지식 가운데 5%만이 디지털화되어 있으며, IBM에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모든 지식을 디지털화하겠다는 목표로 작업 중이라고 한다. 이미 문자의 힘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 서방의 선진국들은 현존하는 자신들의 지식을 후대에 전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정보화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세계정보의 한글화와 한글의 세계화를 실행해야 할 시기이다. 한자로 되어 있는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한글로 번역하여 조상의 지혜를 복원하고 한글로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도 남았고, 아직 영어로 교환되고 있는 고급 정보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여러 사람이 한글로 이용하게 하는 작업도 남아있다. 그리고 문자가 없는 나라들에게 한글로 그들의 문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남아있다.

김미경<대덕대학 교양영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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