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매일 한두끼를 해결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저렴하면서도 맛이 있어야 한다’는 원초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고, 주변이 정갈해야 하며, 막강한 경쟁자가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요건을 두루 갖춘 음식점은 흔치 않다. 불과 수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간판을 내리는 음식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맛이 있다해도 가격이 비싸다면 허사다. 조금 잘되다가도 주변이 소란하면 매상은 곤두박질한다. 종업원이 조금만 불친절해도 손님의 발걸음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수요자 욕구충족이 성공관건

열거한 조건들을 두루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가 안전모드에 진입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의 전향적인 자세다. 음식은 물론 손님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고객들에게 “어 그거 맛있는 건데, 잘 모르시는 구나”, 혹은 “다른 사람들은 좋다고만 하던데...”등의 변명을 펴는 음식점은 오래가기 어렵다. 반면 다소 맛과 서비스가 떨어지더라도 손님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지속적인 개선을 해나가는 업소들은 곧 정상궤도에 오르곤 한다. 업종이나 장소, 심지어 맛보다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앞선 기업들의 경우 오래전부터 ‘고객의 입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하라’는 강령을 구성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그동안 변화의 수용에 뒤처져왔던 대학들도 고객중심사고에 맞추기위해 부단히 노력중이다. `취업`이 최대관심사인 학생과 학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 ‘취업보장’을 내건 대학과 학과들이 학생수의 격감이라는 시대적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다른 사람의 충고나 지적을 수용하는 것이 즐겁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화해 낼 경우 자신은 물론 조직의 성숙으로 화답받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 또 조직들이 ‘소신’이나 ‘신념’, 그리고 ‘관례’라는 미명하에 충언을 멀리한다. 이렇게 되면 개인인 경우 외톨이가 되고만다. 고객들의 취향과 욕구를 외면한 기업들은 도산하거나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문제는 ‘누가 뭐래도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식의 정부정책이나 지도자들이다. 사회통합과 갈등구조를 봉합하고 일체화시켜야 할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 더 기막힌 것은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을 음해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상대방에게는 쉽게 도달하지 못할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자신에게는 느긋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고자 한다. 원만한 해결과 접점이 모색될 리 없다. 상대방의 불만감을 최소화하고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해의 공통분모를 추출하고 이를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

뽑아줬으니 내 맘대로는 독선

문민·국민·참여정부보다 오히려 군사정권들이, 그리고 현재의 직선단체장들보다 과거의 관선단체장들이 세간의 지적과 민심의 향배에 귀를 기울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정통성이 미약했기에 국민들을 회유하고 불만 해소를 위해 인기영합적인 전략을 폈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준 권력인 만큼 눈치보지 않고 휘두른다는 것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사회는 지금 이념과 권력, 직업과 계층, 복지와 환경, 지역, 집단 및 윤리의 갈등으로 그 어느때보다 혼란하다. 갈등을 회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갈등의 관리능력배양을 통해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과 현 정부, 그리고 지자체의 시스템 등을 고려해 볼 때 새롭고 효과적인 갈등해결의 절차와 방법이 제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선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보다 고통스러운 과정이 우리앞에 전개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적어도 갈등을 생산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파괴하는 극단적인 언어와 행위만이라도 자제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서로를 인정하고 마주해야 한다. 이마저도 안된다면 우리사회 비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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