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7월 17일, 우리나라 건국헌법이 제정 공포된 이래 1987년 10월 27일에 이르기까지 39년 동안, 우리는 무려 9차례의 헌법개정을 경험하였다. 그 후 19년이 다 지나가도록 1987년 헌법은 오늘까지도 건재하고 있다.

헌법은 국민주권주의에 기초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권력의 민주화를 지향함으로써 자유와 권력을 상호 융합·조화시키는 국가법질서의 기본법이요 근간이다. 요컨대 헌법은 ‘자유와 권력의 조화의 기술’이다.

생각건대 국민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것은 헌법의 ‘가치 핵(核)’이요 국가의 존립목표가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존립목표가 달성되어가는 것과 함께 ‘헌법발전’은 진전되어진다.

8차 헌법개정까지는 주로 그 동기가 불순한 집권연장 또는 집권방식의 변경에 관한 것인데다, 변칙적이고 은밀했던 것이었다 한다면, 그것은 분명 헌법발전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한편 다수의 헌법학자들로부터 그 태생 때부터 많은 문제점을 지녔다고 지적받고 있는 현행 헌법은 장장(?) 19년이나 장수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살피건대 1987년의 현행 제9차 개정헌법은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국민적 여망을 최대한으로 수용한 합의개헌의 형태로 이루어진 문민헌법이다.

즉 현행헌법은 개정 절차의 민주적 정당성 위에서 탄생된 데다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조하고 특히 헌법소원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국가와 공무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 자신의 기본권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하여 주었다. 말하자면 현행헌법으로의 개정은 ‘헌법발전’과 함께 한 것으로서 제도와 내용의 여하를 뛰어넘어 헌법을 진정 생명력이 있는 것으로 유지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최근 들어 권력조직을 둘러싼 개헌론이 다시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요불급한 개헌은 능사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정략적인 차원에서 개헌이 시도된다면 그것은 반민주적인 것이 될 뿐이다.

무릇 완벽한 헌법이란 어느 국가에도 있을 수 없다. 취약점이 있다면 국민의 성숙한 민주의식위에 탄력성 있고 원만한 해석과 실천을 통하여 오히려 헌법정신을 수호해 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이 현행헌법 역시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여전한 지도층의 헌법 경시 풍조 내지 헌법의식의 결여, ‘자본’과 ‘근로’를 중심으로 한 자유와 평등의 조화 문제, 기본권을 빙자한 진정한 자유의 침해 등은 그 도전의 예가 되겠다.

한편 정보화가 가져온 세계문명의 혁명적 변화, 특히 전 인류가 주권자화하는 사이버크라시(Cybercracy)에 부응할 수 있는 헌법과 헌법이론의 개발, 세계화·지방자치화에 걸맞고 전자 민주주의를 소화해 낼 수 있는 헌법체제의 정비 등은 이 시대의 헌법이 새롭게 감당해 내야 할 변화가 될 것이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우리의 헌정사는 거듭된 헌법유린 속에서도 결국에는 국민과 자유의 승리를 이끌어 냄으로써, 저력 있고 수준 높은 ‘국민의 시대’를 개막케 한 것으로 귀결되었다. 혁명과 항쟁의 성취를 통하여 민주시민의 역량을 제고할 수 있었고, 연면히 이어온 불의에 대한 항쟁을 통하여 국민주권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헌법의 발전과 수호는 결국 국민과 정치 지도자에게 달려있는바, 그것은 헌법상의 제도와 내용은 민주정치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며, 민주시민이 없는 곳에 민주헌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헌절, 7월 17일, 국민의 헌법에 대한 강한 수호의식,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의 헌법에 대한 존중자세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선지자적 분발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오늘 아침이다.

문 종 욱 <충남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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