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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시대 생활유적 속속 드러나

2006-07-10 기사
편집 2006-07-09 14:14:21
 남상현 기자
 southern@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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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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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충청문화재연구원(원장 박순발 충남대 교수)이 개최한 부여 정안리 백제큰길 연결도로 건설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 현장 설명회<본보 1일자 6면>. 대규모 사비백제 밭 유적이 발견된 꿩바윗골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 김용민 실장 등 참석자들은 “옛날 같았으면 발견되지도 않았을 유적”이라며 밭 유적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 부여지역에는 정림사지, 부소산성 등 겉으로 드러난 유적 중심의 조사와 함께 백제 사비도성의 생활상을 유추하기 위한 다양한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이 결과, 사비시대 당시 도로, 공방지, 창고 등 각종 생활유적이 속속 발견됐다.

◇최초로 발견된 고대 연작증거

충청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한 사비백제 밭 유적은 사비도성인들이 연작에 따른 지질 손상을 극복하기 위해 이랑과 고랑을 매년 번갈아가며 경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최초의 발견이었다. 이랑은 폭 105-114cm, 높이 10-18cm의 규모로 유구 전면에 소, 사람 등 다양한 발자국이 확인됐다. 경작지가 연작을 전제로 일궈진 논이나 밭이라는 점에서 고대부터 연작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 흔적이 선명하게 나타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유적은 거둬들인 곡식단을 노지에 보관했던 낟가리 시설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랑이 끊어진 평지 부분에서 발견된 낟가리 유적에는 나무 기둥으로 보이는 시설을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한 흔적이 발견됐다. 반면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 조각 몇 편에 불과했다.

◇사비도성 입지와 저습지 유적

사비도성에서 최근 2-3년 동안 발견된 생활유적은 창고, 도로, 집터, 공방터 등 다양하다. 이처럼 부여지역이 공주와는 달리 다양한 백제의 생활유적이 발견되는 것은 입지에 그 원인을 들 수 있다. 웅진 시대가 고구려의 침략을 피해 조급하게 조성된 반면 사비도성은 조성 이전부터 상당한 계획을 갖고 실천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발굴을 통해 드러난 사실. 때문에 부여 지역 내 사비도성 발굴은 도성 내 구획과 도로망, 주택가와 논·밭 등의 실체 파악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사비도성 조영과정의 계획은 당시 저습지 개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충청문화재연구소 이호형 발굴조사부 부장은 “군수리, 가탑리, 궁남지 주변 발굴을 통해 드러난 사비도성은 저습지 등 그 이전에는 개발이 거의 없었던 지역에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수반한 형태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며 “정치·군사적 시설은 물론 신도성의 경제적 토대가 될 농경지를 저습지 개발을 통해 기반을 다졌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특히 저습지 등 일련의 발굴 성과에 대해 문화재 전문가들은 일본의 선진 문화재 발굴 기술의 영향을 들고 있다.

김용민 문화재연구소 유적보존실장은 “공주가 지형 등의 이유로 생활유적에 대한 발굴 동기 부여가 돼있지 않았던 반면 부여 사비도성 지역은 당시 생활기반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적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며 “생활유적이나 논, 밭 등 경작 유구 등 최근 발굴 방식이 정교하게된 데에는 일본의 선진 문화재 발굴기술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南尙賢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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