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심상정 후보 면담서 "진실 증언해주신 분들 정치권에서 쫓겨나"
심 후보 "민주당, 제대로 성찰했다면 오거돈·박원순까지 오지 않았을 것"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위력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 김지은씨가 "제게 2차 가해를 했던 이들은 청와대와 국회, 공공기관의 주요 요직으로 대부분 영전해서 가 있다"고 말했다. "김건희씨의 `안희정 불쌍` 발언이 공개된 후 엄청난 조롱과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호소했다.

김지은씨는 MBC `스트레이트`의 `김건희 7시간 통화녹음` 방송 관련 21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진실을 증언해주신 분들은 사실상 정치권에서 쫓겨나 여러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정 후보와 김씨의 만남은 안 전 지사를 옹호하고 성폭력 피해자와 미투 전체를 폄훼하는 듯한 내용의 김씨 발언이 방송된 것과 관련해 심 후보가 제안해 이뤄졌다.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고 정의당에선 장혜영 비서실장과 배복주 부대표가 동행했다.

MBC `스트레이트`는 지난 16일 "미투도 뭐 하러 잡자고 하냐. 사람 사는 게 너무 삭막하다"며 "난 안희정이 솔직히 불쌍하더만. 나랑 우리 아저씨(윤석열)는 되게 안희정 편"이라고 언급한 통화녹음을 공개한 바 있다.

이날 방송에서 김건희씨는 또 "미투 터지는 것은 다 돈을 안 챙겨주니까 터지는 것 아닌가"라고 말해 미투와 성폭력 피해자 여성 전체를 비하했다는 논란과 비판을 여성계를 중심으로 받았다.

이같은 김건희씨 발언에 대해 김지은씨는 방송 다음 날인 지난 17일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당신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결국 2차 가해의 씨앗이 됐고, 지금도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며 김건희씨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건희씨는 아직 이렇다 할 사과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8일 "사적인 전화통화를 가지고 2차 가해라는 표현은 성립하기 쉽지 않다"며 윤석열 후보나 국민의힘에서 공식 사과를 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녹취록을 공개한 MBC측은 피해자에 대한 광범위한 2차 가해에 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고, 김건희 씨의 관련 발언을 비판하는 민주당은 정작 자당 내에서 일어나는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2차 가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게 심 후보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심 후보는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있어 가장 큰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정치권에서 누구도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지 않는 현 상황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껴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지은씨의 행동이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큰 용기가 되고 변화의 모멘텀이 되었다"며 "사법적으로 이미 판단이 끝난 안 전 지사 권력형 성폭력이 정치 영역에서는 여전히 전환되지 못하고 이렇게 또 결과적으로 아픈 상처를 헤집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심 후보는 지적했다.

김지은씨는 "많이 힘들다. 재판 이후에도 계속 2차 가해가 지속되고 있다"며 "어려운 현실에서 혹시라도 저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분들께도 따뜻하게 온기가 전해질 수 있는 자리였으면 해서 용기 내어 왔다"고 말했다.

김지은씨는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가진 말의 힘이 너무 크다. 일반 시민들에게 굉장히 큰 영향력을 미친다"며 "분명히 가해자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성범죄자로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왜곡하고 조롱하는 발언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조롱하고 왜곡하는데 어느 누가 자신의 피해 사건을 고발하고 끝까지 싸우겠냐"며 김지은씨는 "(김건희씨 발언은)그런 용기를 꺾는 발언이었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큰 상처가 되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김건희씨가) 사과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다"며 "어찌 보면 사담이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 발언으로 인해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악플을 달고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공적 위치에 계신 분들이 언행에 신중하면 좋겠다"며 "본인들의 언행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김지은씨는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심 후보는"사적 대화인데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말은 맞지 않다"며 "윤석열 후보와 김건희씨는 이미 공적 관심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적 대화라 하더라도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가 되었고 그것이 현재 광범위한 2차 가해의 씨앗이 되고 있다"며 "김건희씨 말은 대법원 판결까지 확정된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 대해 국민들에게 그 본질을 왜곡하고 있으므로 사과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지은씨는 MBC를 향해선 "언론사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며 "누군가의 인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만일 피해자 인권에 대한 중요성, 윤리의식이 있었다면 그 부분은 방송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김지은씨는 또 "민주당 내 2차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계속 하고 있지만 제가 너무 미약한 사람이다 보니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가해자 측에서 거짓 증언을 하고 제게 2차 가해를 했던 이들은 여전히 청와대, 국회, 공공기관의 주요 요직으로 대부분 영전해서 가 있는데 진실을 증언해주신 분들은 사실상 정치권에서 쫓겨나 여러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는 게 김지은씨의 주장이다.

"이런 일들이 제 사건 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김지은씨는 덧붙여 주장했다.

심 후보는 이에 대해 "사건 당시 안희정만 제명 시키고 무마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 차원에서 어떻게 문제를 성찰하고 재발을 방지할 것인지를 책임 있게 대책을 내놓고 추진했어야 하나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미룰 수 없는 것은 이것이 권력형 성범죄이기 때문이다"며 "당시 안희정이 누렸던 권력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당의 것이기도 하므로 이 부분에서 명확하게 당 또한 그 책임의 주체일 수밖에 없다"고 심 후보는 강조했다.

"당시 민주당에서 그 책임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이후 오거돈, 박원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며 "민주당에서 권력형 성범죄와 2차 가해 문제에 있어 원칙을 명확히 하지 않았기에 자꾸 다른 얘기를 하는 분위기가 근절되지 못했다"고 심 후보는 목소리를 높였다.

심 후보는 "김지은이라는 이름이 당당하게 서야 우리 여성들의 삶도 당당하게 설 수 있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피해자가 제대로 사과받고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의미가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후보의 한 사람으로서 노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지은씨는 "사회적 약자와 여성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심 후보님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어려우시겠지만 끝까지 힘내주시면 좋겠다.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며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주시면 고맙겠다"고 당부했다.

심상정 후보는 한편 지난 20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냐"는 시청자 질문에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라고 답했다.

심 후보는 "정의당의 페미는 여성과 성 소수자 그리고 모든 시민이 존중받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심 후보는 그러면서 "저도 대선을 50일 앞두고 득표 전략상 분노에 편승해 갈라치기는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며 "그러나 정치는 삼가야 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대안을 내놓아야 할 후보들이 혐오를 부추기고 갈라치는 득표 전략을 펴는 데 분노한다"고 말했다.

유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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