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의 달이 뜨면 (에릭 리슨 지음·이경남 옮김 / 생각의힘 / 752쪽 / 3만 원)
냉전의 시대, 전격하는 히틀러와 처칠의 도전
공습 상황 속 처칠의 의지·리더십 빛 발하다

1940년 5월, 영국을 둘러싼 정세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했고, 폴란드와 슬로바키아는 이미 무너진 뒤였다. 히틀러의 마수는 영국을 향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카만 폭격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런던 상공을 가득 메웠다. 시민들은 거리를 걷다가, 소풍을 나왔다가 머리 위로 치열하게 펼쳐지는 공중전을 지켜봤다. 볼록하게 차오르는 달이 뜨는 밤이면 희미한 달빛에도 폭격기의 목표물이 될까 두려워하며 보름달을 `폭격기의 달`이라고 불렀다. 폭력과 긴장이 만연했던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갔을까?

이 책은 윈스턴 처칠이 영국 총리로 임명된 때부터 1년 동안 전개된 영국 안팎의 정세를 세밀하게 풀어냈다. 미공개 정부 보고서, 처칠의 딸과 개인 비서가 기록해 온 일기들, 매스옵저베이션 일기 기록원들의 자료를 토대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그 시대를 재구성했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비하인드 스토리, 재치와 농담 그리고 평범한 고민들이 처참한 상황 속에서 저마다 힘을 갖고 빛난다.

특히, 저자는 처칠의 독보적인 리더십에 주목했다. 그는 전쟁의 저변에서 대치하는 힘의 성격, 즉 영국이 독일을 완전히 척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미국의 산업 역량과 병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불안에 떠는 시민들과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영국이 끝내 승리할 것이란 믿음을 불어넣는 작업이 필요했다. 처칠은 항공기생산부를 신설하고 전투기 생산과 승무원 훈련, 항공기 공장 방어에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전쟁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 속엔 기지를 발휘해 끔찍했던 날들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이 존재했다.

저자는 허망한 폭력 틈새로 살아남은 은밀하고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능란하게 펼쳐보인다. 영국왕립공군(RAF)과 독일 루프트바페의 치열한 공방전, 폭격당한 도시, 끊이지 않는 공습 사이렌 소리와 포성의 이미지가 읽는 이를 압도한다. 희미한 달빛에도 폭탄의 표적이 될까 염려하던 영국 시민들의 `잊히기 쉬웠던` 이야기들 역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영국과 독일, 미국 지도자의 관점과 전략에 따라 전세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이 선사하는 큰 재미다.이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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