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연 목원대 사범대학 교직과 교수
임재연 목원대 사범대학 교직과 교수

작년 한 해 학교폭력 미투 논란의 사건들이 사회적 이슈였다. 유명 운동선수나 연예인의 학창시절 학교폭력 사건이 오랜 시간이 지나 피해자로부터 소환되고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학교폭력 미투를 왜 한 것일까? 가해자들이 사회적으로 잘나가고 잘 사는 것이 싫어서? 학교폭력 사건이 너무 심각해 피해자가 아직 힘들어서?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학교폭력의 원인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본 결과이다. 연구를 통해 보면 많은 경우 피해자에게 학교폭력은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에게 학교폭력 사안은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사안이 종결되지 않은 이유는 가해자에게 처벌이 없었거나, 처벌은 있었지만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가 없었거나, 학교에서의 사안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미투없이 살아간다.

한 여대생의 사례를 짧게 소개하고 싶다. 대학교 2학년인 이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학교폭력 피해가 아직도 마음에 큰 상처로 자리 잡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남학생 A가 이 친구에게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여학생이 외모로 놀림을 당하자 하지 말라고 했고, 그래도 놀림이 계속되자 화가 나서 A에게 욕설로 반응을 했다.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여학생이 재미있었는지 A의 놀리는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놀림에 너무 화가 난 여학생이 A를 세게 밀쳤고 A는 넘어졌다. 넘어진 A는 담임교사에게 학교폭력을 신고했고, 주변의 학생들도 여학생이 A를 밀치는 폭력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과연 A가 피해자이고 여학생이 가해자인가? 대학생이 된 지금도 이 여학생은 그때 담임교사와의 상담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너도 힘든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욕하고 친구를 쳐서 넘어지게 한 것은 폭력이다. 너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이후 여학생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교실에선 입을 다물고 살았다고 한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여학생은 이런 말을 했다. 자신도 A의 놀림에 대한 반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외모에 대한 놀림을 계속 당해 너무 화가 났고 상처받았는데, 자기가 받았던 피해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 자기는 학급에서 가해자로 찍혀 그림자처럼 살았는데, 피해자로 둔갑한 A는 지금도 잘살고 있다고.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데 먼저 학교폭력을 당해서 억울하고, 그 사건 이후 대인관계가 힘들게 느껴지고 늘 우울하다고. 이 여학생에게 해결책을 묻자 A에게도 처벌이 있었어야 했다고 대답한다.

학교폭력 사안의 처리는 재발 방지를 위해 학급의 학생들에게 교육적 시사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사례의 경우 놀림도 학교폭력이며 A가 먼저 언어폭력을 지속한 점에 대해 여학생에게 사과하는 것이 당사자뿐 아니라 학급 학생들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당사자들을 불러 상담한 것 외에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학급에서 이 여학생은 사실 방치되어 있었고, 또 한 명의 왕따 피해자가 양산되었다.

이제 학교폭력은 피해자 또는 가해자와 같은 특정 학생들의 개인적 문제로 보기 보다 폭력이 용인되고 있는 학교·학급 문화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크다. 대부분의 피해가 학급 내에서 또래로부터 발생하는 우리나라 학교폭력의 특성상 학교폭력의 문제는 학급 학생들과 담임교사가 함께 예방하고 해결해 가야 하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매년 정부가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 지침을 발표한다. 학교는 정부의 지침을 토대로 학교폭력 예방과 대응을 위한 활동을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학교폭력 관련법이 제정돼있는 세계에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며, 대응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있다. 그러나 법과 시스템만으로는 학교폭력 피해를 막거나 피해자를 보호하기 어렵다. 학교폭력 사안과 피해자를 대하는 학교와 교사의 태도가 더 민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재연 목원대 사범대학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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