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근은 50년을 3-4분에 압축하여 `엄마`라는 메아리를 만들었다. 노래가사가 절반이 `엄마`라서 엄마를 몇 번 부르나 바를 정(正)자로 세어보니 열아홉 번. 타고난 선율과 감성의 그는 여름밤 풀벌레소리 같다. 19번 모두 다른 파장으로 창공을 흔든다. `엄마`는 그가 살아오면서 `배고파, 외로워, 슬퍼, 기뻐, 두려워, 안아줘…` 단 2음절로 모든 정보를 다 표현 할 수 있다고 증명하는 외침이었다. 수채화 속에 드로잉 선이 보이는 맑은 그림 같기도 하고, 볶지 않고 날 씨앗으로 짠 기름 같기도 했다. 간절함을 온몸으로 짜서 노래하는데 과하지 않고 모자라지 않다. 순수함과 세련됨이 듣는 사람의 감정을 흔든다. 선율과 바디표정이 점수를 뒤집어놓은 것 같다.
=백지영은 김동현을 "왜 이 사람이 이제야 우리 앞에 나타났느냐?"고도 했다. 세상엔 빛을 볼 기회가 없어 사라지는 고수들이 참 많다. 이런 사람들을 불러내는 기획이 진정한 평등 공정 정의가 아니겠는가? 문화계의 `끼리끼리`나 정계의 회전문 권력찬스는 반 평등, 반 공정, 반 정의다. 이것은 미래를 망친다.
`미디어 세상`이다. 미디어는 개천에서 용을 만든다. 미디어의 아름다움은 개천에서 용을 찾아 보여줄 때 대중은 감동한다. 예술과 문화는 미디어가 개천에서 자는 잠룡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끼리끼리` 카르텔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다. 찬스만 찾고 찬스만 거래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찬스를 만들어준 `내일은 국민가수 굿!` 최길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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