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어느 날 아내와 남편이 벚꽃 진 가로수길 밴-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는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남편은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말문을 가로막는다. 지루해한다. 남편은 문제 해결형 모델로 목적과 그에 부합한 결론을 듣고자 할 뿐이다. 반면, 아내는 남편과 정서를 나누는 대화를 하면서 공감대를 느끼고자 한다.

공감(empathy)이란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하고 느끼는 것으로 아내는 남편이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장황한 설명에 대해 수다일 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결국 아내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만다.

이 상황은 평범한 중년 부부 가정의 일상일 수 있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의 대화 속에서 엇박자를 내는 것은 왜일까? 일류역사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원시시대 여성들은 채집 활동을 하면서 다중 일을 비교적 여유롭게 하면서 생활한다. 반면, 원시시대 남성들은 움직이는 동물들을 사냥하는 수렵 활동을 한다. 경계와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해서는 목표 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이런 관계로 남성들은 속전속결로 판단하고 목표를 해결해야 하는 DNA가 강화되어 왔다. 반면, 여성들은 느슨한 채집활동으로 공동체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생활한다. 이와 같은 인류학적 남녀 다름 때문에 대화의 방식도 다르다. 여성은 공감 지향형으로 진화하는 반면, 남성은 목표지향형이다. 따라서 부부간 대화 속에서 남성들은 여성들의 전후 사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끼어들기를 반복한다.

한편, 생물학적으로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스러움을 보여주지만, 공감력을 떨어뜨린다. 심지어 혹자들은 아내들이 무리하게 남편들의 공감력에 집착하는 것은 남편을 아줌마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메타버스 시대에 공감력을 갖춘 여성들이 불확실 시대를 선도하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여성들 못지않게 남성들도 공감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번 주말에는 아내와 천변을 거닐면서 아내의 고민이 있다면 끝까지 들어주어야겠다. 그리고 하얀 갈대 출렁이는 가로수길 사이로 개울물 소리, 따스한 아침 햇살 맞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해서라도 아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다. 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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