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어느덧 겨울이 다가와 나무마다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을 보여 산등성이의 윤곽이 드러나는 계절이 되었다. 겨울철 3개월을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에서는 `폐장(閉藏)`이라 하고 있다. 이 말은 겨울이 세상 모든 만물의 생기가 숨어 체내로 저장되는 계절이므로, 특히 마음가짐을 감추고 숨겨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남모를 뜻을 품거나 귀한 것을 얻은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일상에서는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에서 지내고, 땀을 통해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을 어기면 신장이 상하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병에 걸리며 새롭게 소생하는 힘이 약해져 질병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언뜻 읽으면 겨울은 활동을 멈추고 따뜻한 곳에서 잘 쉬라는 말처럼 들린다. 산업화 이전의 농업사회에서는 겨울이 농한기이기 때문에 겨울은 일을 줄이고 낮이 짧아진 만큼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이렇게 문장대로 지내는 것은 어렵지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거두고 감추는 계절`에 인체의 양기도 쓸데없이 동요되지 않도록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마음의 내면을 단단히 하고 뿌리와 씨앗을 단단히 하라는 말 같다.

이 구절을 읽을 때면 사람의 1년도 나무의 1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무도 봄·여름에는 색이 연한 넓은 띠를 만들고 꽃과 잎이 무성하다가, 가을에는 봄·여름과 비교해 추운 기온 조건 탓에 색이 진하고 폭이 좁은 띠를 만든다. 겨우내 나무는 나이테 만드는 일을 멈추고 잎을 떨구어 낸 다음 겨울잠에 드는 것이다. 뿌리와 씨, 추운 겨울을 지나고자 가장 중요한 핵심인 뿌리와 씨에 초점을 맞추고 움츠린다. 멈추어 가만히 머물러 침잠해 있지만 봄을 기다리며 견디어 내고 기다리는 시간이 겨울인 것이다.

겨울을, 이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는 방법을 나무에게서 하나 더 배울 수 있는데, 나무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는 것이다. 울창한 숲에서 하늘을 보더라도 나무가 완전히 하늘을 가리는 일은 드물다. 나무 꼭대기 부분이 상대 나무에게 닿지 않는데, 특히 비슷한 수령과 같은 수종끼리의 나무들이 자라날 때 그러하다. 수관기피(樹冠忌避, crown shyness), 즉 나무의 꼭대기(crown)가 수줍어하듯(shyness) 서로 닿지 않고 자라는 현상을 말한다. 물과 토양, 햇빛 등 한정된 자원을 섭취하는 데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거리 유지를 한다는 가설도 있고, 바람이 불 때 서로 부딪쳐 잎이 상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병충해를 스스로 막기 위한 나무의 방어기제라는 가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공존을 위한 나무의 생존전략인 것이다. 바이러스 표면에 왕관(crown, 라틴어로 corona)같이 스파이크 단백 돌기가 붙어서 이름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된 것을 생각하면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팬데믹 시대, 과학자들은 `모든 사람이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할 수 없다(no one is safe until everyone is safe)`며 협력과 연대를 강조해왔다. 기후 변화, 인간의 환경 파괴로 인해 신변종 감염병은 계속 발생할 것이고 선진국에서 1·2차, 부스터샷까지 먼저 접종되는 동안 백신접종률이 낮은 아프리카에서 이번의 오미크론 변이가 생겨난 것과 같이 변종은 계속 출현할 지도 모른다. 날씨가 추워지고 사람들이 실내에서 모이는 겨울철에 더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계절적인 추세와 연말 모임, 크리스마스 때 가족들이 모이는 상황을 생각하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더 늘어날 것을 예측해볼 수 있다. 대전지역도 지난 4일부터 세 자릿수의 확진자 수를 보이고 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숨기듯, 수줍어하듯 모두를 위해, 나를 위해 나무처럼 겨울을 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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