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충남도건축사협동조합 이사장
김양희 충남도건축사협동조합 이사장
계단이 잠시 우리 사회 화두가 된 적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계단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층과 계급문제를 보여주었다. 공간에 고정체로 지나치던 계단은 영화의 배경인 가정부의 남편을 숨겨두었던 지하벙커, 송강호의 반지하 주택, 박 사장이 살고 있는 2층의 대주택을 통해 빈부의 격차와 이로 인한 권력을 미장센으로 보여주었다. 각각의 공간은 기다란 계단으로 이어져 있고, 힘겹게 올랐을 때 보이는 다른 세상은 눈높이를 통한 연출로 그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계단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과거의 인류가 비탈진 길을 오르기 위해 나무뿌리나 바위를 딛고 올라선 것이 시초일수 있으나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지구라트(ziggurat)는 종교적 의미의 계단으로 현재와 닮아있다. 지구라트는 신과 지상을 연결시키는 거대한 계단형 탑으로 사각형 기단이 여러 개 겹쳐진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도 지구라트의 일종이다. 신을 위한 제단이며 신으로 가기 위한 그 시대의 권력으로 지구라트는 선택된 자만이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현재에도 이어져 종교나 대규모 집회에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장소로 계단은 그 역할에 집중되며 이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감시도 가능하다.

계단은 우리의 실생활에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사용자가 위를 향해 올라가거나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쉽게 이용하는 것이 엘리베이터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수직통로는 계단이다. 계단이 없다고 상상해보자. 언덕 오르막길이나 건물 내부에서 위층 또는 지하층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하다. 날개가 있어 날아가거나 사다리를 이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건축에서 계단은 피난층(지상으로 연결된 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로 건축물의 수직축을 담당하고 있다.

계단은 2개층 이상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면서 건축 설계의 디자인요소로 공간을 다이내믹하게 만들 수 있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상가주택을 설계한 적이 있다. 전면 도로에 접한 폭이 좁고 긴 소규모 부지여서 계단에 대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돌음계단이나 원형계단을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계단이 차지하는 공간이 사뭇 크기 때문에 이 부지의 경우 층고 및 구조적 해결로 계단참을 각층의 출입구공간으로 대체해 설계함으로써 건축주의 만족을 얻었다. 건축법은 높이가 3m 이상이면 계단참을 두어야만 직통계단으로 인정한다. 건축의 용도 및 규모에 따라 계단실 유효 폭과 계단의 단높이, 단너비 등이 법규로 정해져 있으며 계단도 피난규정의 기준에 따라 직통계단, 피난계단, 특별피난계단으로 그 설치기준을 정하고 있다. 계단은 계단의 단수와 디딤판의 치수에 따라 계단실의 크기가 정해지고 그 위치에 따라 건축공간이 배치되기 때문에 건축설계에서 그 중요도는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하면서도 어떤 감흥을 느끼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은 공간설계에서 계단의 디자인이 갖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계단을 실내 틀 안에 담지 않고 외부에서 각층으로 연결되게 드러냄으로써 역동적 이미지를 나타내거나 넓다란 로비의 타원형계단은 유려한 곡선의 미로 실내의 조형미를 담당하기도 한다. 폭이 좁은 건물에 일자계단을 계획해 공간 낭비를 줄이고 각층 연결에 공간감을 만들어주는 등 계단은 설계에 따라 건물에 생동감과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요소다. 계단은 건축 외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계단 오르내림으로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키고 심혈관질환 발생을 줄여 사망률을 감소시킨다.

건강관리로 우리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운동도구기도 하다. 필자도 아파트계단을 출퇴근에 오르내리겠다 결심하며 실행에 옮기려 노력하지만 안타깝게도 매번 지속함에 어려움을 느낀다. 디자인도 건강관리도 참 어려운 일이다. 건축물에도 활력을 주며 건강관리에도 최고지만 필자에게 항상 고민거리인 계단은 건축과 우리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며 건축물에서 마주칠 때 계단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항상 생각하고자 한다. 김양희 충남도건축사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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