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전배 문화예술경영인
임전배 문화예술경영인
인간의 이기심으로 루틴을 상실한 지구기후의 불규칙성은 이제 뉴스도 아닌 채 불청객처럼 일상을 침범한다. 엄혹한 추위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득돌같이 급습한다. 돌이켜보면 예전 겨울은 몸 하나 따뜻하면 그리 아쉬울 것 없던 단순한 시절이었다. 음력 절기 입동을 지나 소설이나 대설 무렵이면 분주해진 어머니는 큰 눈 올세라 정성껏 200포기 김치를 담갔고 80킬로 쌀 한 가마에 연탄 500장쯤 부엌 옆 창고에 쌓아둔 후에야 어려운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시름을 놓으셨다.

당시 김장,쌀,연탄은 겨우살이 3대 필수품이었다. 연탄은 아궁이라 불리는 화구에 들어가 방고래를 통해 8시간 정도 구들장을 일정한 열기로 데워주고 소멸하는 난방 연료다. 구공탄 또는 19공탄으로 불리던 연탄은 하나 위에 다른 하나를 얹어가며 시차를 두고 화력을 이어야만 한다. 그만큼 교체주기를 맞추기가 힘들어 연탄 갈이에 실패한 가장은 일가의 불씨를 사수하지 못한 대가로 비난받곤 했다. 의당 방바닥 윗목은 새벽 목축임 식수로 준비되던 자리끼가 얼어붙을 정도로 냉골이 되어 가족들이 잠 못 이루며 투덜대는 엄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한때 가정용 땔감의 70%까지 감당했던 연탄은 저가 연료라는 장점이 컸으나 이따금 안타까운 연탄가스중독사고를 온전하게 피하기도 어려웠다. 석탄산업은 채산성 악화로 가격이 오르고 아파트 건축이 확대되며 가정용 에너지 패턴의 전환기가 왔다. 국민소득향상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전한 가스, 석유, 전기에너지가 주종으로 진입했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어요." 라는 시즌광고 카피를 추억한다면 아마 그 시기 정도가 될 듯하다.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속 사정을 대변하는 듯한 검은 연탄은 인류를 위해 자신의 온몸을 아낌없이 불살랐으나 가차 없이 밖으로 버려지는 존재, 누군가의 애꿎은 발길질에 무참히 으스러질 뿐 원망하지 않는 숙명, 눈 내린 언덕길 미끄럼 방지용 연탄재라는 최후 소임까지 안고 생산된 제품이 바로 연탄이었다.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안도현의 `연탄 한 장`이라는 시의 후반부다. 나 아닌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같은 존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심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묵직하게 질문한다. 두 편을 대하며 온화한 심성을 늘 품지 못했던 미안함과 유치했던 과거 일탈을 들켜버린 듯한 부끄러움이 공존한다. 하여 한 때 지녔던 거친 생각이나 불안한 눈빛을 거두고 베풀고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스민다.

아무튼, 답답했던 지나온 이태 동안 지인들의 현존이 참으로 고마워 감사한다. 애쓰며 스스로 살아내고 도우며 서로 함께 살아진 궤적을 돌아보며 본디처럼 평온해질 일상을 내밀히 소망한다. 그리고 얽매임 없이 하루의 일기를 써 내려가듯 소박한 회복과 갱신은 다음처럼 고대한다. "숙면 후 거뜬히 일어나는 새벽, 갓 구운 빵 냄새가 옷에 배는 아침, 커피 향 번지는 여유로운 오후,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은 퇴근길 저녁, 여러 수다로 가족이 행복한 깊은 밤." 현실은 항상 예상과 기대만큼 그리 쉽사리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인생 여정을 여백이 넉넉한 겨울 풍경화처럼 겸허하고 담담하게 그려갈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순탄하고 행복하리라 믿는다. 임전배 문화예술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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