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며칠 후면 2022학년도 수능일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수능 연기 사태까지 겪었지만, 올해는 `위드 코로나`로 인한 우려 속에도 일정 변경 없이 진행되어 다행스럽다.

대학입시제도가 변경될 때마다 수험생들이 겪는 어려움과 혼란을 생각하면 입시제도는 가급적 연속성을 가지게 하고 큰 변화를 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좋은 의도에서 만든 제도라 할지라도 시행 과정에서 장점보다 단점이, 보편적 공정함에 앞서 일부가 누리는 부당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당연히 적절한 수정을 가해야 한다.

대입 변천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해는 1980년일 것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민심 달래기`의 일환으로 그 해 7월 `교육 정상화 및 과열 과외 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대학별 본고사를 폐지하고 고교 내신과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합격자를 선발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학력고사 대입의 시작이었다. 발표된 그 해 입시부터 바로 적용됐으니 일선 학교와 수험생들에게는 그야말로 격동과 혼란의 한 해였다.

그 이전의 대학 입시에서 예비고사는 비중이 낮았고 실제 당락은 본고사에 의해 좌우됐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지원 학생 수준에 따라 난이도 있는 본고사 문제를 출제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변별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학교 수업만으로는 난이도 높은 본고사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고액 과외가 성행하게 됐다. 당시 본고사 폐지와 과외 금지 조치는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여주어 큰 호응을 받았다.

필자는 1984학년도 입시를 치른 학력고사 세대다. 주요 본고사 과목이었던 국영수 공부 부담이 줄어든 것은 반가웠지만, 학력고사 준비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본고사 시절에는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며 기타 과목은 기본만 하면 되었지만, 본고사가 폐지되며 기타 과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따라서 어느 한 과목도 소홀해서는 안 됐다. 공부해야 할 과목이 무려 15개나 됐는데, 과학 교과 네 과목 전부가 필수였고 사회와 실업 선택과목도 각각 따로 있었다. 특히 필자를 힘들게 했던 것은 실업 선택인 공업이었다. 공업 관련 분야를 두루 다루는 내용이었는데, 두툼한 교과서가 암기 사항으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감회가 새롭다. 수험 생활 중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즐겨 들르던 전자오락실을 D-100일 때 끊은 기억도 있다. 낭비되는 시간도 아까웠지만 입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애꿎은 전자오락 탓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시험 2주 전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것에 대한 공부를 중단했다. 기존에 알고 있는 것들만 실수 없이 해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돌이켜 보면 자칫 긴장과 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는 막바지 수험 생활을 여유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된 좋은 결정이었다.

시험 하루 전, 문득 그동안 치른 모의고사에서 한 번도 만점을 받지 못했던 과목이 떠올랐다. 평소 재미없게 여겨 소홀히 했던 공업이었다. 바로 교과서를 펼쳤다. 중요 사항엔 이미 갖가지 색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찬찬히 읽어나가며 공업 교과서 완독으로 대입을 위한 시험 전날 공부를 마무리 지었다. 일종의 객기였지만 실제 학력고사에서 공업은 만점을 맞았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수시와 정시로 나누어져 있 는 현행 대입 제도에서 특히 수시 선발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많다. 심지어는 그전의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 차례 시험으로 입시 전체가 좌우되는 제도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80년대 식의 획일적 제도가 다시 등장해서는 곤란하다. 수시 제도를 잘 가다듬어 입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적절한 준비가 가능하게 단순화하고 선발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편법이 끼어들 여지를 가능한 한 줄여 모든 이들이 납득하고 당사자가 기꺼이 결과를 수긍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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