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용태 대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류용태 대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는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 즉 사회 고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노블레스(명예)는 닭의 벼슬을, 오블리주(책임과 의무)는 달걀의 노른자를 말한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벼슬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 데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당시 영국에 끝까지 저항한 프랑스의 도시 깔레에서 유래됐다.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6명의 깔레 시민에게 저항의 책임을 물으며 교수형에 처했다. 그때 깔레에서 제일 부자였던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가 선뜻 나섰고, 시장인 `장데르`와 거상 `피에르 드 위쌍`도 나섰다. 피에르 드 위쌍의 위대한 정신을 따르겠다며 아들도 나섰고, 이에 감격한 시민 4명이 나서 7명이 됐다. `외슈타슈드`는 1명이 초과된 관계로 처형하는 날 제일 늦게 나온 사람은 빼자고 제의했고, 전날 밤 자신의 집에서 자살했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으면 순교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크게 감동한 영국의 왕비가 왕에게 애원해 처형이 취소됐다. 그 후 깔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됐다. 몇 백년이 지나 조각가 로댕이 10년간에 걸쳐 만든 동상이 `깔레의 시민상`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경주 최부잣집`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이 가문은 9대 동안 진사를 배출했고, 12대에 걸쳐 만석꾼이었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지만, 이 가문은 무려 300여 년 동안 존경받는 부자였다. 이에는 특별한 원칙이 있었다. 1)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2)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3)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4)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5)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6)최 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우당 이회영 선생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명문가로 이 가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서울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자였다. 이회영 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그의 여섯 형제를 비롯해 50여 명의 가족들이 전재산을 처분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했다. 당시 처분한 돈이 현재 시가로 600억 원이 넘는데, 신흥무관학교와 신민회, 의열단 등 독립운동자금으로 쓰여졌다.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2년 전, 대전에 문화예술로 사랑나눔을 실천하는 `대전사랑메세나`가 발족했다. 문화소외계층과 장애인, 미혼 여성, 국가유공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봉사·기부단체다. 이 단체는 젊은 한의사인 김진혁 회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계층들이 봉사를 전개해오고 있는데, 대전의 아름다운 기부문화의 본보기가 돼줬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한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근 별세했다. 그런데 그의 과오를 두고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하는지 논란이 일었다. 문득 기사를 보다가 눈에 이 글이 섬뜩 들어왔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영국·캐나다 등은 대통령부터 사병까지 묘 면적이 1.3-1.5평으로 같다. 일본·중국은 법률로 매장을 금지하고 있다`

현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모두에게 사회적 책임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권(부와 지위, 명예)을 가진 사람은 사회를 위해 봉사와 기부의 책임과 같은 덕목을 가져야 한다. 편법보다는 정도를, 과시보다는 절제를, 독식보다는 양보를 통해 더욱 선진화 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류용태 대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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