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한국산림복지진흥원장
이창재 한국산림복지진흥원장
지금으로부터 약 46억 년 전 지구가 생겨난 이래,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인류가 출현한 것은 10만 년밖에 되지 않는 반면, 지구상에 단순한 형태이나마 식물이 생겨나 살아온 것은 4억-5억 년 전으로, 인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지구상에서 생존해 낸 식물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식물의 특성들을 살펴 이를 배우고자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사군자를 꼽을 수 있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에서 군자가 가져야 할 고결함, 덕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나무는 겨울철을 지나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절개의 상징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식물, 나무, 숲에선 이러한 인문적 가치를 무궁무진하게 발견할 수 있다. 식물에 관한 책을 내신 동양철학자 한 분은 대화중에 당신의 삶은 그 책을 쓰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했다. 순간 그분이 수십 년 동안 배운 동양철학보다도 나무와 숲에서 배운 것이 더 많다고 하시는 것으로 들렸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동양철학자들이 활동한 것은 길어야 3천 년 이내인데, 지구상의 식물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식물, 나무와 숲의 인문적 특성과 가치에 대한 책들이 눈에 띄는데, 코로나 19와 첨단기기들로 지쳐가는 우리들에게 자연과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변화의 속도가 빨라서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갑질`이라는 말이 영어 스펠링(gapjil)으로 외국에까지 언급될 정도니까. 나무와 숲들이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나무와 숲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쟁에 관한 것이다. 경쟁은 사실 세상 만물이 작동하는 원리라고도 할 수 있으나, 문제는 그 경쟁 속에서 `상대방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고 있는가?` 이다. 숲에서 나무들은 경쟁하지만 스스로 변화시키고 혁신한다. 햇빛을 받기 위해 자기 몸체를 햇빛 비치는 방향으로 기울이고 몸체를 변형시키기는 것이 바로 그 예다. 그러나 우리 사람이 사는 사회는 어떤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짓밟기까지 한다. 요즘 우리 숲에서 소나무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언뜻 활엽수가 경쟁에서 이겨서 소나무를 죽인 것 같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소나무는 그 속성이 빛이 많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소나무는 자기의 생명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잘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평생이 걸린다고 하는데, 이러한 원리로 나무와 식물, 야생동물류 등은 숲이라는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숲속 사회와 같았으면 좋겠다. 수시로 자기 자신을 살펴서 스스로를 알아가고, 그대가 있어, 내가 존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무슨 일을 위하여 필요할 때면 나를 먼저 바꾸고 혁신하는 그런 사회를 꿈꿔 본다. 이창재 한국산림복지진흥원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