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
며칠 새 가을 기운이 완연해졌다. 푸른 하늘은 명징하다. 구름은 한가롭다. 산기슭에 구절초 꽃은 하늘거리고, 물가에 무리를 이룬 어여쁜 여뀌는 가을의 전령 같다. 대기가 맑으니 가시거리가 한껏 길어진다. 서울 남산타워에서는 인천 바다가 눈앞에 있는 듯하고, 파주 통일전망대에서는 개성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먼 풍경이 가까이 다가올 때 횡재를 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살아서 이런 가을을 맞으니 나는 그럭저럭 운 좋은 인생을 산 셈이다.

아침에는 강낭콩을 넣어 햅쌀로 지은 밥에 갈치조림을 먹었다. 갈치와 함께 얼큰하게 조린 가을무가 달다. 가을볕 드는 창가에 앉아 가르랑거리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붉은빛 도는 남천나무를 바라볼 수 있다면 운 좋은 인생을 살았다 해도 좋으리라. 해질녘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 기침 하는 사람들, 입원한 혈액투석환자들,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남자, 젖 달라고 생떼를 쓰는 아기들, 사랑을 앓는 다정한 청년들이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간다. 사람으로 사는 한 잔디 깎는 기계에 끼여 죽는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다. 게다가 먼 고장에 인심이 후한 고모들 두엇이 살아 있고 그 고모의 딸들이 잘 웃는 처녀들이라면 세상은 더욱 살 만할 것이다.

어렸을 때 이웃에 진주가 고향인 아주머니가 살았다. 남편은 큰 요릿집에서 일하는 요리사였다. 그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자매처럼 사이가 좋았다. 두 집 다 가난한 살림을 꾸렸는데, 가진 것을 자주 나누었다. 그 남편이 간혹 요릿집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올 때는 우리 집과 나누곤 했다. 처음 먹는 생선 요리였는데,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 집은 아들만 셋이고, 그 중 한 애는 내 또래였다. 세월이 오래 된 탓에 그 아주머니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 아주머니의 아름다운 진주 말씨는 잊지 못한다. 아주머니의 목소리의 맑은 울림과 진주 말씨는 정말 좋았다. 귓가에 맑은 은종이 울리는 듯했다. 몇 년 뒤 그 분이 죽었다. 일요일 종교 집회에 참석하려고 나섰다가 횡단보도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고지만 그 누구의 고의는 없었을 것이다. 가끔 죽은 아주머니를 생각한다. 요릿집 요리사였던 그 남편은 어떻게 되었을까? 남은 아이들은 잘 살고 있을까?

필립 라킨의 시 중에 `잔디 깎는 기계`가 있다. 시인이 겪은 일을 보고서처럼 감정을 섞지 않고 사실적으로 드러낸 시다. "잔디 깎는 기계가 멈췄다, 두 번째다./무릎을 꿇고 들여다보니/칼날 사이에 고슴도치가 끼여 있었다./죽어 있었다./긴 풀 속에 있었던 것이다." 잔디를 깎다가 고슴도치를 죽인 이야기다. 이 고슴도치와는 안면이 있고, 먹이를 준 적도 있지만 고슴도치는 잔디 깎는 기계에 끼여 죽었다. 신이 잠깐 한눈을 팔았던 것일까? 고슴도치에게 이 죽음은 비명횡사였을 것이다. 고슴도치의 죽음에 대한 가느다란 죄책감이나 회한이 없지는 않았을 테니, 시인은 "이제 눈에 띄지 않는 그 세계를/내가 망가뜨린 것이다."라고 쓴다.

수레국화가 피는 가을이 오고, 천둥과 벼락이 울려 퍼지는 이 세계에서 약간의 열망과 약간의 불안을 안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 있는 것은 기적이고, 건강을 누리며 사는 것은 운 좋은 인생이다. 다만 그 기적은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우연이 빚어낸다. 이 가을에 넘치는 빛의 격려, 작은 꽃들의 위로가 없었다면 인생은 삭막했을 것이다. 한 시인이 썼듯이, 나는 다른 나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 여기가 내 현존의 자리다. 나는 그것에 만족한다. 다만 나는 실수로라도 세계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운 좋은 인생을 살고 싶다.

정강이뼈가 부러져 살갗을 뚫거나 교통사고로 몸이 깨지고 부서져 생과 작별하는 불운 따위는 피하고 싶다. 오, 그게 내 뜻대로 될 일은 아니지. 하지만 우리는 크고 작은 실패와 작은 불행을, 살아 있음이 일으키는 번민을 견뎌내며 살겠지. 통장 잔고가 비었다고 비탄에 빠지지는 말자. 삶이 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애초에 삶은 우연의 조합이 빚어낸 사태일 뿐이다. 꽃처럼 고운 단풍이 들어가는 이 가을 당신이 고슴도치나 해파리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 있다는 거 자체가 당신 인생이 기차게 운이 좋다는 증거다. 장석주 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