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대전의 대덕연구단지, 완만하게 구부러지는 과학로 가로수길을 돌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발을 들인다. 이곳은 기원 100년이 넘은 국내 최장 역사의 지질과학과 지질자원 분야 전문연구기관이다. 붉은 벽돌의 성곽 같은 본관을 멀리 바라보며 들어서는 입구. 과속방지턱의 가벼운 충격을 넘어 차단기를 지나자, 바로 오른편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디자인의 `지질박물관`. 쥐라기 스테고사우루스의 골판처럼 솟은 화강암 벽은 건물을 관통하듯 비스듬히 서 있다.

필자가 15년 이상 몸담아왔고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는 지질박물관은 대전의 대표적인 과학문화 공간이다. 여기 중앙홀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공룡 전시물이 하나 서 있다. `무시무시한 손`이라는 의미의 학명처럼 크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긴 앞다리. 약 반 세기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고비사막의 공룡. 2014년, 마침내 그 정체가 만천하에 공개되자 전 세계는 놀라움에 탄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그것은 바로 `데이노케이루스(Deinocheirus mirificus)`다.

다시 2009년 남부 고비사막의 부긴자브(Bugiin Tsav). 2008년, `한국-몽골 국제공룡탐사` 초보 탐사대원으로 사막의 `뜨거운 맛`을 처음 경험한 나는 이제 한결 조심스럽고 능숙하다. 깊고 날카롭게 깎인 그랜드캐니언을 연상시키던 힐멘자브(Hermiin Tsav)와 달리, 낮고 완만한 구릉과 계곡뿐인 이곳. 덕분에 머리꼭지에 쏟아지는 태양광 샤워를 피할 만한 그늘은 농담 좀 보태 화석보다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혼자 터덜거리며 퇴적층 사면을 살피던 8월 16일 오후, 계곡 아래 무언가 파헤쳐진 작은 둔덕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뒹구는 것은 멀리서 보기에도 거대한 공룡의 뼈. 도굴로 훼손된 흔적이 역력하다. 도굴꾼 눈에 먼저 띤 화석지는 눈을 가린 채 바닥에 내던져진, 밑그림도 모르는 `1만 피스 짜리 퍼즐`과 다름없다. 중요하고 값나가는 퍼즐 조각들은 이미 사라졌다. 그들이 원하는 조각 이외 모든 것은 거추장스런 장애물일 뿐. 그렇게 7천만 년 동안 보존됐던 소중한 증거들은 철저히 파괴된다. 그러기에 도굴된 화석지는 탐사대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이런 곳을 수습하는 것은 일분일초가 아쉬운 탐사대에게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버려질 뻔했던 화석지는 발견 사흘 만에 반전의 카드를 내놓았다. 파편 더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완벽한 형태의 왼쪽 어깨와 팔 골격! 1965년, 폴란드 고생물학연구소의 탐사대가 알탄울라의 세 번째 계곡(Altan Uul-III)에서 발견했던, 2.4 m 길이의 거대하고 늘씬한 앞다리 골격을 빼닮았다. 순간, 현장의 모든 화석들은 180도 그 의미가 달라졌다.

깨진 파편들을 찾아 조립하고, 뒤죽박죽인 화석들을 분류·기록하며, 손을 타지 않은 척추와 위장내용물을 새로 발견해 발굴과 석고포장까지, 약 17일간의 발굴작업으로 수습된 화석은 이 공룡의 특징과 생태를 상당 부분 알아낼 수 있는 분량이었다. 가장 앞쪽 경추(목뼈)까지 발견된 마당에 막바지까지 희망을 가지고 두개골을 찾아 수색했지만, 결국 헛수고. 손목 부분이 깨져 절단된 앞다리 골격은 도굴꾼들이 어떻게 이곳을 유린했는지 짐작케 했다. 그런데 현장에 남아 있던 뒷발가락 마디 한 조각이 훗날 결정적인 연결고리가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데이노케이루스는 이제 막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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